기아, 28년 만에 현대차 판매 역전|내수 침체 속 RV 쏠림의 전제는?

· KRX

코스피 6937 신고가, 그 안에서 조용히 벌어진 역전

5월 내수 완성차 시장에서 기아의 국내 판매가 현대자동차를 앞지른 날, 코스피는 5% 급등하며 6937포인트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같은 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3조183억원, 1조9352억원을 순매수했습니다. 삼성전자가 5.44% 오르며 23만2500원 신고가를 쓰고, SK하이닉스는 장중 145만원을 돌파했습니다. 지수가 7000선 코앞까지 오른 그날, 완성차 섹터는 이 흐름에서 비껴 있었습니다.

현대자동차의 4월 국내 판매는 5만4051대로 전년 동기 대비 19.9% 급감했습니다. 경기 불황과 유가 상승이 내수 위축을 이끌었다는 것이 시장의 해석입니다. 그런데 같은 조건 아래 기아는 5만5108대를 팔았습니다. 7.9% 증가입니다. 현대자동차그룹에 편입된 이후 28년 만의 역전이었습니다.

르노코리아의 내수 판매는 같은 기간 23.4% 줄었습니다. KG모빌리티도 내수에서 4.6% 감소했습니다. 기아만 홀로 국내 수요를 가져갔습니다.

코스피 급등 당일, 완성차 섹터는 현대차 1.51%, 기아 1.45%로 지수 상승률을 하회했습니다. 반도체 대형주가 지수를 이끄는 구도에서, 완성차 안에서 벌어진 역전은 시장의 시야에서 잠시 벗어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치가 가리키는 방향은 하나입니다. 같은 그룹 안에서 자금의 쏠림 방향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RV 쏠림이 만든 역전 — 그리고 그 역전이 묻는 질문

기아의 4월 국내 판매 5만5108대 중 3만5877대가 RV 모델이었습니다. 쏘렌토 1만2078대, 카니발 4995대, 스포티지 4972대, EV3 3898대입니다. 같은 기간 현대차의 RV 판매는 1만9284대였습니다. 기아 RV가 현대차 RV보다 1.8배 더 팔렸습니다.

RV 라인업의 경쟁력 차이가 이 역전을 만들었다는 설명은 표면상 깔끔합니다. 그런데 iM증권 리서치센터장 고태봉의 분석에 따르면, 피지컬 AI 시대에 '몸'에 해당하는 자율주행·로보틱스 부문에서 가장 빠르게 실현 가능한 플랫폼이 바로 자동차입니다. 현대차그룹이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보유하고 코스피 상단 8000선 전망에 등장하는 것은 기아가 아닌 현대차입니다. 피지컬 AI 수혜 서사의 핵심은 현대차이지만, 실제 판매를 이끄는 것은 기아입니다.

여기에 긴장이 있습니다. 현재 기아를 사는 자금은 RV 판매 모멘텀을 보고 있습니다. 현대차를 사는 자금은 피지컬 AI 장기 재평가를 보고 있습니다. 두 그룹이 같은 차트를 다른 타임프레임으로 읽고 있습니다. 단기 수급은 기아 쪽이 우세하지만, 그 단기 수급을 뒷받침하는 전제가 지속 가능한가가 지금 시장이 묻고 있는 질문입니다.

조건이 하나 더 있습니다. 기아 노조는 2026 단체협약 개정 요구안에 AI·휴머노이드 로봇 도입 시 '노조 협의' 강화와 총고용 보장 문구 신설을 요구했습니다. 영업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요구한 규모는 기아 기준 2조7200억원입니다. RV 판매 호조가 비용 구조 압박으로 이어지는 경로가 이미 열려 있습니다. 역전의 수혜를 흡수하는 속도와 비용이 역전을 좁히는 속도 중 어느 쪽이 빠른가, 그 답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기아의 역전이 지속될 전제 — 그리고 그것이 흔들리는 조건

기아의 이 판매 역전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구조적 변화라면, 시장의 현대차 대비 기아 할인율은 재평가 압력을 받습니다. 올해 들어 SK스퀘어 주가는 128% 상승하며 시총에서 현대차를 추월했습니다. SK하이닉스 지분 약 20%를 보유한 지주사가 완성차 대표 기업을 시총에서 넘어선 것은, 자동차 섹터 전반에서 이탈한 자금이 반도체 밸류체인으로 이동했음을 직접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2019년에도 유사한 구도가 있었습니다. 당시 기아는 SUV 라인업 확대로 내수 점유율을 끌어올렸고, 이후 2~3분기에 걸쳐 현대차와의 주가 괴리가 좁혀졌습니다. 차이점은 그때는 전기차 전환 논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EV3가 기아 RV 판매에서 3898대로 4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내연기관 RV와 전기차가 동시에 역전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 2019년 선례와 구분됩니다.

역전이 지속되는 조건은 하나로 수렴합니다. RV 판매 호조가 2분기에도 이어지는가입니다. 기아의 5월 판매 결과가 발표되는 시점, 특히 쏘렌토와 EV3의 합산 판매가 3만 대 이상을 유지하면, 기관 자금은 현대차그룹 내 비중 재조정 근거를 얻습니다.

역전이 무너지는 조건은 비용 측에 있습니다. 노조 협상에서 성과급 요구가 수용될 경우, 기아의 영업이익률 압박이 주가 할증 근거를 약화시킵니다. 현대차 역시 같은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지만, 피지컬 AI 장기 서사를 가진 현대차와 단기 RV 모멘텀으로 올라선 기아는 비용 압박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다를 수 있습니다. 28년 만의 역전이 노사 협상 타임라인과 충돌하는 지점에서, 기아의 모멘텀이 현대차 대비 프리미엄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가 다음 분기의 핵심 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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