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가격 폭등|코스피 1만피, 이익이 받쳐주나?

· KRX

7800을 넘긴 이유

코스피가 오늘 사상 처음으로 7800선을 돌파하며 4.32% 급등했습니다. 삼성전자는 28만원, SK하이닉스는 194만원으로 나란히 신고가를 경신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협상안을 "완전히 용납 불가"라며 거부해 유가가 브렌트유 기준 배럴당 104달러까지 치솟은 날에 벌어진 일입니다. 지정학 리스크가 고개를 든 날에 코스피가 4% 넘게 오른 것은 단순한 수급 현상이 아닙니다.

그 배경은 지난 주말 미국 시장에서 시작됐습니다.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5.5% 급등하면서 마이크론이 15%, 샌디스크가 16% 올랐습니다. 핵심은 애플이 반도체 생산 일부를 인텔에 맡기기로 잠정 합의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 한 건의 계약 소식이 GPU 수요에 머물던 AI 반도체 투자 서사를 CPU와 메모리 전 영역으로 확장시켰습니다.

키움증권은 이날 삼성전자의 2분기 영업이익을 100조원, SK하이닉스를 70조원으로 각각 제시했습니다. 시장 컨센서스를 각각 16조원, 10조원 초과하는 수치입니다. 범용 D램 가격이 전 분기 대비 53~55% 오르고 모바일 D램은 76%나 급등할 것이라는 전망이 근거입니다. 이 수준의 가격 상승이 확인된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2분기 합산 영업이익은 170조원을 넘어섭니다. 분기 기준으로 두 기업이 함께 이 정도 이익을 올린 전례는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긴장이 생깁니다. 이 숫자를 시장이 이미 얼마나 반영했느냐입니다. SK하이닉스는 5월 들어서만 31% 올랐습니다. 이익 추정치는 그 속도를 따라잡고 있지만, 주가가 이익보다 빠르게 움직일 때 밸류에이션은 얇아집니다.

PER 5배의 역설

오늘 코스피 급등의 표면 설명은 반도체 실적입니다. 그러나 그 설명만으로는 JP모건과 골드만삭스, 현대차증권이 잇달아 코스피 목표치를 1만 이상으로 올린 이유가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들이 상향의 근거로 든 것은 이익의 크기가 아니라 밸류에이션의 왜곡입니다.

현재 국내 반도체 업종의 12개월 선행 PER은 5.17배입니다. 최근 20년 평균인 10배의 절반 수준입니다. 반도체 업종의 12개월 선행 순이익 전망치는 올해 초 137조원에서 현재 537조원으로 약 3배 넘게 올랐습니다. 그런데 같은 기간 시가총액 상승률은 135%에 그쳤습니다. 이익이 주가를 앞지르면 PER은 내려갑니다. 지금 반도체 PER이 낮은 건 실적이 나빠서가 아니라 이익 전망치가 주가보다 훨씬 빠르게 상향됐기 때문입니다.

JP모건은 이를 근거로 코스피 강세 시나리오 목표치를 1만으로 제시했습니다. 다만 골드만삭스와 현대차증권도 공통적으로 하나의 단서를 달았습니다. HBM을 중심으로 메모리 이익이 지속 가능한지, 즉 올해의 이익이 반짝 피크냐 구조적 변화냐에 따라 전망이 갈린다는 것입니다. 현대차증권은 약세 시나리오에서 코스피 하단을 6000으로 제시했습니다. 강세 1만 2000과 약세 6000이라는 두 숫자 사이 폭이 두 배입니다.

HBM 가격은 범용 D램처럼 단순히 수급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고객별 장기계약과 세대 전환, 패키징 수율이 가격을 결정합니다. SK하이닉스가 HBM 시장에서 유지하는 선행 우위가 흔들리지 않는다면 이익 지속성 논쟁은 SK하이닉스에 유리하게 결론납니다. 그러나 그 우위가 얼마나 오래 유지되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이란 리스크가 무력화된 이유

오늘 시장이 이란 변수를 무력화한 방식은 주목할 만합니다. 트럼프의 "용납 불가" 발언 이후 브렌트유가 104달러까지 급등하고 S&P500 선물이 0.3% 하락했습니다. 그러나 국내 프리마켓에서 삼성전자는 6%, SK하이닉스는 7% 올라 있었습니다. 중동 리스크가 커질수록 반도체주는 오히려 더 올랐습니다.

이 역설은 자금 흐름에서 이해됩니다. 5월 들어 한국 전체 증시 ETF인 EWY에서 10억 달러가 순유출됐습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비중이 48%인 DRAM ETF에는 19억 5000만 달러가 순유입됐습니다. 외국인 자금이 한국 지수 전반에서 빠져나오면서 메모리 반도체로만 집중 재배치된 것입니다. 이란 리스크가 커질수록 에너지 섹터 노출을 피하고 AI 이익이 확실한 메모리로 자금이 몰리는 구조가 형성됐습니다.

그러나 이 구조가 작동하는 전제는 미중 정상회담입니다. 트럼프와 시진핑은 14~15일 베이징에서 회담을 예정하고 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해제가 미중 협상의 묵시적 데드라인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시장은 이 회담 전에 종전 협상이 진전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만약 회담이 열리는 시점까지 호르무즈가 여전히 막혀 있다면, 사우디 아람코 CEO가 경고한 '시장 정상화 2027년'이라는 시나리오가 현실적 위협으로 부상합니다. 그때는 에너지 쇼크와 인플레 재점화가 반도체 이익 서사를 압도할 수 있습니다.

현재 코스피 7800은 메모리 이익 폭등과 낮은 밸류에이션, 그리고 이란 리스크의 한시적 소화라는 세 가지 조건이 동시에 성립하는 지점에 서 있습니다. 12일 발표되는 미국 4월 CPI가 전월 대비 0.6% 이상을 기록하면 연준의 금리 동결 기조가 강화됩니다. 그 경우 달러 강세와 함께 외국인의 메모리 집중 매수세가 얼마나 유지되는지가 다음 고점을 결정할 검증 지표입니다. 반면 14일 미중 회담 전 이란과의 협상에서 호르무즈 개방 신호가 나온다면, 오늘의 랠리는 1만피를 향한 구조적 출발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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