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록 이탈 vs 골드만 9000|코스피 랠리의 다음 관문은?
차익실현의 역설
코스피가 7498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날,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한국 ETF에서 하루 만에 6000억 원을 빼갔습니다. EWY 출시 이후 단 하루 기준 최대 유출입니다. 5거래일 누적으로는 1조 3000억 원이 빠져나갔습니다. 지수가 신고점을 찍는 순간, 가장 큰 손이 조용히 짐을 쌌습니다.
이 이탈의 논리는 단순합니다. 올해 삼성전자는 126%, SK하이닉스는 154% 올랐습니다. 스트래티거스증권의 ETF 전략가는 "현재처럼 극단적인 수준에서는 일부 비중을 줄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했습니다. 공매도 세력도 한국 주식에 대한 약세 포지션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차익실현은 랠리의 부정이 아니라, 랠리가 충분히 성숙했다는 확인입니다.
그러나 같은 날 다른 그림도 있었습니다. 국내 외국인 투자자는 유가증권시장에서 3조 1348억 원을 순매수했습니다. 7개월 만에 최대 기록입니다. 블랙록의 미국 상장 ETF에서 돈이 빠지는 동안, 서울 거래소에서는 외국인 직접매수가 역대급으로 유입됐습니다. 같은 한국 주식, 다른 포지션입니다. 이 분리가 다음 국면을 결정할 핵심 변수입니다.
골드만의 9000, 근거는 무엇인가
블랙록이 이탈하는 동안 골드만삭스는 코스피 목표치를 9000으로 올렸습니다. 불과 20일 전 8000으로 높인 뒤 또 한 번 상향입니다. 골드만은 한국을 "아시아에서 가장 확신하는 투자처"라고 불렀습니다.
근거는 반도체입니다. 하드웨어와 반도체 업종이 2026년 한국 기업들의 이익 성장률을 300%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으로 봤습니다. 하이퍼스케일러의 AI 투자 확대로 D램과 낸드 공급이 사상 최고 부족 수준에 놓여 있다고 했습니다. "시장은 이익의 지속 가능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것이 골드만의 핵심 주장입니다. 밸류업 지수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2024년 9월 출시 이후 누적 수익률 200%로 코스피 상승률을 46%포인트 앞섰습니다.
반론의 단서도 존재합니다. 골드만의 목표치 상향은 추격 성격을 띱니다. 시장이 이미 움직인 뒤 분석이 따라가는 구조입니다. 블랙록의 이탈과 반도체 차익실현이 본격화될 경우, 9000 경로는 단기적으로 흔들릴 수 있습니다. 코스피가 7500 위에서 며칠간 안착할 수 있는지가 이 시나리오의 첫 번째 관문입니다.
중동 변수와 재건 수혜
코스피 조정의 직접 도화선이 된 것은 중동이었습니다. 미국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무력 충돌을 재개했습니다. 이란 항구도시 반다르아바스 인근에서 미군 공습이 확인됐고, 코스피는 이날 1.82% 하락 출발했습니다. 삼성전자는 3.5%, SK하이닉스는 2.7% 동반 급락했습니다.
그러나 중동 변수는 단방향이 아닙니다. 종전 기대감이 살아날 때마다 한국 건설주는 반대로 움직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합의 가능성이 크다"고 발언했던 날, GS건설은 11%, 삼성물산은 7.86%, DL이앤씨는 7.73% 올랐습니다. 중동 재건 수요가 현실화될 경우, 과거 중동 플랜트 경험이 풍부한 국내 건설사들이 수주 경쟁에서 앞선다는 논리입니다.
문제는 불확실성이 장기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WSJ에 따르면 이란은 "비현실적인 계획으로는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르면 이번 주 '프로젝트 프리덤' 재개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협상이 타결되면 국제유가는 하락하고 반도체 수요에는 우호적인 매크로 환경이 만들어집니다. 반대로 충돌이 격화되면 에너지 가격 급등, 글로벌 성장 둔화, 반도체 수요 위축으로 이어지는 경로가 열립니다. 코스피 7500 안착 여부는 반도체 이익 지속성만이 아니라 호르무즈의 다음 뉴스에도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