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빅 PPO 공장 멈춘 날|코오롱인더 14% 급등의 전제
코스피 6700, 그리고 조용히 상한가 친 소재주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빅이 이란 공습 이후 폴리페닐렌에테르 수지 공장 가동을 멈췄습니다. 사빅은 전 세계 고순도 PPO 생산량의 70%를 담당하는 업체입니다. 그 날 코오롱인더스트리 주가는 14%가 넘게 뛰었습니다.
코스피가 사상 최초로 장중 6700선을 돌파한 28일, 시장의 눈은 SK하이닉스와 현대차에 쏠려 있었습니다. SK하이닉스는 장중 133만원을 터치하며 신고가를 재차 경신했고, 현대차는 7%대 급등했습니다. 지수는 전날에 이어 이틀 연속 사상 최고치를 새로 썼습니다. 기관이 4400억원 이상 순매수하며 지수를 끌어올렸고, 외국인은 2000억원 규모 매도로 돌아섰습니다. 코스피 코스닥 합산 시가총액이 6101조원을 넘어서며 한국 증시가 영국을 제치고 글로벌 8위에 올라섰다는 보도도 이날 나왔습니다.
화려한 숫자들 사이에서, 유가증권시장 한쪽에서는 아주스틸이 29% 급등하고 포스코홀딩스가 12% 이상 오르는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이란이 5월 30일까지 철강 슬래브와 철판 수출을 금지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흐름과는 별개로, 코오롱인더스트리라는 소재 기업이 장 초반부터 14%를 넘겨 10만원대를 돌파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철강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전 세계 PPO의 70%가 사라진 자리
PPO, 즉 폴리페닐렌옥사이드는 인공지능 서버와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동판적층판의 핵심 소재입니다. AI 반도체 기판에 쓰이는 CCL을 만들 때 반드시 필요한 중간 원료입니다. 그 공급 구조에서 사빅은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란의 공습이 이 공급 구조를 흔들었습니다. 사빅의 PPE 수지 공장이 4월 초 가동을 멈춘 것입니다. 전 세계 CCL 업체들은 갑자기 대체 공급처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사빅의 공백을 채울 수 있는 업체는 많지 않습니다. 코오롱인더스트리가 그 중 하나입니다. 현재 코오롱인더의 mPPO 생산 규모는 연간 800억원 수준이지만, 김천 2공장이 2분기 말 완공되면 1600억원 규모로 두 배가 됩니다.
삼성증권 리서치는 이번 사태로 코오롱인더의 신규 공장 가동률이 예상보다 빠르게 오를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다수의 CCL 업체들이 공급망 이원화 차원에서 코오롱인더에 추가 증설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설명입니다. 공급망 이원화는 한번 진행되면 단기에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의 에너지 공급망이 재편되는 데 2년 이상이 걸렸습니다.
다만 전제가 하나 있습니다. 사빅의 공장 가동 중단이 일시적이냐, 구조적이냐의 문제입니다. 미국과 이란의 협상이 타결되고 중동 지역 긴장이 해소된다면, 사빅은 빠른 시간 안에 생산을 재개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코오롱인더의 수혜 기대는 급격히 약해질 수 있습니다. 이 구조는 AI 수요 덕분에 생긴 것이 아닙니다. 전쟁이 만들어 낸 공급 공백 위에 서 있습니다.
이 수혜는 언제까지 유효한가
시장이 코오롱인더를 주목한 데는 두 가지 흐름이 겹쳐 있습니다. 하나는 AI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CCL 소재 수요 자체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중동 지정학 불안이 전통적 공급망을 흔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 흐름이 동시에 코오롱인더를 향하고 있습니다.
이 흐름이 유지되는 조건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사빅의 가동 중단이 수개월 이상 이어질 것. 둘째, 코오롱인더의 김천 2공장이 계획대로 2분기 말 완공될 것. 두 조건이 모두 충족되면 코오롱인더는 단순한 테마주가 아니라 실제 수급 구조가 바뀐 기업으로 재평가될 수 있습니다. 코오롱인더의 연간 mPPO 매출이 현재 800억원에서 내년 1600억원으로 올라선다면, 그 숫자가 시장이 기대하는 수치와 맞닿는 시점이 중요해집니다.
반면 미-이란 협상이 5월 중 타결되고 사빅이 재가동에 들어간다면, 오늘의 급등분 상당 부분은 되돌림을 맞을 수 있습니다. 글로벌 공급망은 공포가 빠지면 생각보다 빠르게 원래 자리로 돌아갑니다. 2022년 반도체 공급난 당시 웃돈을 주고 확보에 나섰던 재고가 2023년 가격 폭락을 이끈 것처럼입니다.
현재까지의 근거는 수혜 방향으로 기울어 있습니다. AI 수요라는 구조적 성장 위에, 공급 공백이라는 단기 이벤트가 얹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판단은 이란 협상 진전 속도가 결정합니다. 다음 주 미-이란 3차 협상 일정과, 코오롱인더 2분기 실적 발표에서 김천 공장 가동률 수치가 나올 때, 오늘의 기대가 현실 위에 서 있는지를 확인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