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1분기 역대 최대|관세 충격과 JIC 수급 변수
역대 실적과 관세 충돌
삼성전자가 올해 1분기 영업이익 57조 2000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시장 컨센서스를 13조 원 이상 웃도는 수치입니다. 분기 매출도 133조 원으로 처음으로 분기 100조 원 벽을 넘었습니다.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 증가율이 755%라는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이 사이클의 정점이 아니라는 분석이 동시에 나왔다는 점입니다.
메리츠증권 김선우 연구원은 현재 메모리 사이클이 아직 중반 수준에 불과하다고 짚었습니다. 판가 상승 이후 물량 확대 구간이 겹치는 폭발적 개선 시점은 2026년 4분기에서 2027년 2분기 사이로 전망됩니다. 즉, 지금의 서프라이즈가 천장이 아니라 계단의 중간쯤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시점에, 방향이 반대인 힘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미국 의회가 동맹국에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 동조를 의무화하는 매치법(MATCH ACT)을 발의했습니다. 초당적 지지로 통과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입니다. 법안이 시행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사업장에 대한 VEU 재지정 유예가 실질적으로 무력화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D램 분야의 대중국 노출이 새로운 리스크 변수로 부상하는 국면입니다.
역대 최대 실적과 수출 불확실성의 동시 진행. 이 두 가지가 같은 주에 공존했습니다.
JIC 전환이 바꾸는 수급 구조
이 수급 구조를 더 깊이 보면, 지금의 메모리 가격 급등에 구조적 설명이 하나 더 있습니다. 기업들의 재고 전략 전환입니다.
전통적 공급망 환경에서 기업들은 JIT, 즉 '적시 조달' 방식으로 반도체를 구매했습니다. 재고 비용을 최소화하고 필요할 때만 사들이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코로나 공급망 충격 이후, 그리고 트럼프 관세와 중동 전쟁이 겹치면서 기업들은 JIC, 즉 '만일을 대비한 선매입' 방식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 전환은 단순한 수요 증가와 다릅니다. JIT에서 JIC로 넘어가면, 실제 소비량보다 훨씬 많은 재고를 미리 쌓으려 합니다. 이것이 단기에 수요곡선을 강하게 우측으로 밀어내고 가격을 급등시킵니다. 트렌드포스는 2분기 반도체 가격이 전분기 대비 50% 이상 급등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여기서 반전 카드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시장 참가자들은 AI 수요 모멘텀에 주목합니다. 그런데 지금 가격 급등의 상당 부분은 AI가 아니라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만들어낸 재고 패닉 매입일 수 있습니다. 만약 중동 전쟁이 예상보다 빨리 종결되고 공급망 불안이 해소되면, JIC 수요가 일시에 소멸하면서 수요곡선이 다시 좌측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AI 수요가 온전히 남더라도 가격 조정 압력이 생깁니다.
AI 수요는 구조적이지만, 그 위에 올라탄 재고 수요는 순환적입니다. 두 가지를 분리해서 봐야 합니다.
HBM 전선과 EUV 투자 승부
삼성전자는 이번 실적 발표와 거의 동시에 ASML에 EUV 노광장비 약 20대를 포함해 총 70여 대의 노광장비를 발주했습니다. 발주 금액만 10조 원 이상입니다. 이 장비들은 내년 상반기 P5 클린룸 준공에 맞춰 투입되며, 1c D램과 HBM4 생산능력을 대폭 확대하는 데 쓰입니다.
삼성전자는 현재 SK하이닉스의 약 2배 수준인 EUV 장비 40여 대를 이미 가동 중입니다. 이번 추가 발주로 초미세공정에서의 장비 격차를 더 넓히겠다는 계산입니다. 특히 HBM4는 이미 세계 최초 양산 출하를 공식화한 상황이어서, SK하이닉스와의 HBM 주도권 경쟁이 본격 전환점을 맞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 역시 1분기 실적에서 또 한 번의 서프라이즈가 기대됩니다. 연간 영업이익 전망치가 1주일 만에 7.36% 상향됐고, 180조 원 수준으로 올라섰습니다. HBM3E 독주에 이어 HBM4E 경쟁력을 어떻게 방어하느냐가 SK하이닉스의 핵심 과제입니다.
주목할 점은 삼성전자의 메모리 출하량 중 60%를 AI 데이터센터 업체들이 이미 흡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비율이 더 높아지느냐, 아니면 범용 D램 쪽 수요 증가가 균형을 잡느냐에 따라 마진 구조가 달라집니다. D램과 낸드 가격이 전분기 대비 각각 80~90% 급등한 것으로 추정되는 현재, 가격 상승 속도가 언제까지 유지되느냐가 진짜 변수입니다.
시나리오 분기와 투자 판단
지금까지의 분석을 두 갈래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경로는 메모리 사이클 중반 지속입니다. 미중 반도체 갈등이 오히려 한국 기업의 협상력을 높이고, JIC 수요가 AI 수요와 겹쳐 2026년 4분기까지 가격 상승 흐름이 이어지는 시나리오입니다. 이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연간 이익은 현재 컨센서스를 다시 웃돌 가능성이 높습니다. KB증권이 제시한 삼성전자 2026년 영업이익 327조 원은 지금 가격 상승 속도라면 보수적 추정치가 될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 시가총액이 엔비디아 대비 19%, TSMC 대비 57%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은 밸류에이션 측면에서 여전히 매력적인 근거로 작동합니다.
두 번째 경로는 하반기 피크아웃 우려입니다. LS증권은 1분기 호실적이 계약가격의 조기 반영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나머지 분기의 상승 폭 둔화 가능성을 경고했습니다. 중동 휴전이 종전으로 이어지면 JIC 수요가 빠르게 수축하고, 매치법이 통과되면 대중국 매출 불확실성이 실적 추정을 복잡하게 만듭니다. 이 경우 증권가의 목표주가 상단 상향 흐름이 다시 조정받을 여지가 있습니다.
증거의 무게는 현재 첫 번째 경로 쪽에 기울어져 있습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매치법의 실제 시행 범위가 어디까지 미치느냐, 그리고 중동 정전 타임라인이 JIC 수요 소멸 속도를 얼마나 빨리 만들어내느냐가 관건입니다. 한국 반도체주의 핵심 리스크는 AI 수요가 꺾이는 것이 아니라, 지정학이 만들어낸 수요 착시가 해소되는 속도에서 옵니다. 구조적 수요와 순환적 수요를 구분하는 시각이 지금 가장 필요한 렌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