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 사상 최대 실적|외국인 54조 매도의 배경

· KRX

실적과 매도의 충돌

삼성전자가 1분기 영업이익 57조2000억원을 기록했습니다. SK하이닉스는 38조4600억원으로 두 회사 모두 사상 최대 실적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외국인은 반도체주를 54조원어치 팔아치웠습니다. 역대급 실적 발표 시점에 역대급 외국인 매도가 겹쳤습니다. 이 두 흐름이 동시에 나타난다는 것 자체가 질문을 만들어냅니다. 실적이 좋으면 주가가 오르는 것이 교과서적 논리인데, 지금 시장은 그 논리를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개인투자자는 같은 기간 삼성전자를 5조7890억원 순매수하며 외국인 물량을 받아냈습니다. 외국인이 팔고 개인이 사는 구도, 이것이 지금 한국 반도체 시장의 단면입니다. 어느 쪽 판단이 맞는지는 아직 열려 있습니다.

실적 서프라이즈의 구조

이번 실적 서프라이즈의 핵심은 가격입니다. 모바일 D램과 낸드 가격이 전분기 대비 90% 급등했습니다. 공급은 제한된 상태에서 AI 서버 수요가 판가를 끌어올린 결과입니다. DB증권 서승연 연구원은 "타이트한 공급과 강한 서버 수요가 판가 상승폭을 크게 확대했다"고 분석했습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증권가 목표주가가 110만원에서 180만원으로 올랐습니다. 단순한 실적 개선이 아니라 AI 인프라 투자 확대라는 구조적 수요가 ASP를 밀어올리고 있다는 판단입니다. 2분기에도 메모리 가격이 30% 추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ASML EUV 연간 출하량의 3분의 2를 선점하는 데 20조원을 투입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설비투자가 아닙니다. EUV 장비는 전 세계에서 ASML만 만들 수 있고, 연간 생산 대수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 희소한 장비를 3분의 2나 확보했다는 것은, 경쟁사가 같은 수준의 공정 전환을 하려 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공정 기술의 격차가 아니라 장비 접근권 자체에서 해자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외국인 매도의 진짜 구조

외국인 매도의 표면적 이유는 지정학입니다. 미국과 이란의 협상 결렬, 호르무즈 해협 봉쇄 리스크가 불확실성을 키웠고, ASML도 실적 호조에도 중국 리스크로 약세를 면치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정학은 단기 촉발 요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 구조적인 문제는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 확대입니다. 중국의 AI칩 자급률이 이미 41%에 달하며, 2030년에는 76%까지 올라갈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 흐름이 현실화된다면 한국 메모리 업체들의 중국향 수요 기반이 장기적으로 좁아집니다. 외국인이 실적을 보면서도 팔고 있다면, 그것은 지금 숫자가 아니라 3년 후의 시장 구조를 할인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반전이 있습니다. 중국 자급률 상승이 위협으로 보이지만, 실상 중국이 공략하는 영역은 범용 로직 칩과 성숙 공정입니다. HBM과 고성능 D램은 다른 차원의 기술입니다. 중국이 HBM3e를 양산하려면 EUV 장비가 필요한데, 대중 수출 제한으로 그 장비를 확보할 수 없습니다. 외국인이 우려하는 중국 리스크가 실제로는 삼성과 SK하이닉스의 핵심 제품군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수 있습니다.

밸류에이션과 시나리오 분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시총을 합산하면 33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됩니다. 그럼에도 두 기업은 TSMC 대비 저평가 상태로 분석됩니다. 메모리 반도체 기업 특유의 사이클 할인이 적용된 결과입니다. 투자자 입장에서 이 저평가가 기회인지, 아니면 구조적 이유가 있는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삼성전기도 이 흐름에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AI 서버 향 MLCC 탑재량 증가와 반도체 기판 사업 성장 기대감에 8거래일 연속 상승하며 시총 순위가 9계단 올랐습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완성품 제조사뿐 아니라 부품 공급망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상승 시나리오는 AI 인프라 투자가 지속되고, 메모리 가격 상승세가 2분기 이후에도 이어지는 경우입니다. EUV 장비 선점, HBM 수요 확대, 스마트폰 회복이 세 축이 동시에 작동하면 현재 저평가는 빠르게 해소될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갤럭시 S26 흥행으로 글로벌 스마트폰 점유율 22%를 회복한 것도 모바일 메모리 수요를 직접 견인하는 요소입니다.

반면 하방 시나리오는 지정학 리스크가 실물 공급망을 건드리는 경우입니다. 호르무즈 봉쇄가 현실화되거나, 미중 관계가 추가 악화되어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가 더 강화된다면 단기 충격은 불가피합니다. 외국인 54조원 매도가 이미 상당한 물량 소화 과정임을 감안하면, 추가 매도 여력이 어느 수준인지가 관건입니다.

다만 하방이 닫혀 있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개인 투자자가 흡수한 물량은 결국 장기 보유 성향이 강한 수요입니다. 공급 잠금, 수요 구조 변화, 밸류에이션 갭, 이 세 가지가 동시에 해소 국면에 접어들 때 주가 회복 속도는 매도 국면보다 빠를 수 있습니다. 슈퍼사이클의 특성 자체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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