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1조 순매도에 코스피 8% 상승|기관 3.3조 매수의 전제는?
축포 대신 사이드카가 울렸다
오늘 코스피는 7209.95에서 7815.59로 마감했습니다. 하루 만에 605포인트, 8.42% 상승입니다. 그런데 이날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약 1조 원을 순매도했습니다. 외국인이 팔아치우는 장에서 지수가 8% 오른 것입니다.
장 초반부터 분위기는 달랐습니다. 코스피가 7486포인트에 출발하자마자 상승폭이 커지면서 매수 사이드카가 발동했습니다. 프로그램 매수 호가가 일시적으로 정지될 만큼 매수세가 한꺼번에 몰렸다는 의미입니다. 전날 밤 뉴욕 증시에서 미국-이란 전쟁 협상이 최종 단계에 돌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다우지수는 1.31% 올라 5만 포인트를 회복했습니다. 여기에 엔비디아가 3년 연속 분기 매출 신기록을 발표하면서 AI 수요가 꺾이지 않았다는 확인이 더해졌습니다. 그리고 삼성전자 노사가 총파업 90분을 앞두고 잠정 합의에 도달했다는 소식이 시장에 도달했습니다. 악재 세 개가 동시에 걷혔습니다.
기관은 이날 하루에만 3조 2590억 원을 순매수했습니다. 개인도 약 1조 4000억 원을 샀습니다. 반면 외국인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노무라는 코스피 목표치를 연내 1만1000포인트로 제시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목표가를 각각 59만 원과 400만 원으로 내놓았습니다. 증권가가 '만스피'를 외치는 그 날, 외국인은 지수를 팔았습니다. 이 괴리가 오늘 장의 핵심입니다.
외국인이 판 것과 기관이 산 것은 같은 주식이 아닙니다
외국인의 순매도를 단순히 '차익 실현'으로 읽으면 오늘 장을 절반만 이해한 것입니다. 주목해야 할 흐름은 코스닥입니다. 코스닥은 이날 1100선을 돌파했는데, 외국인 순매도는 코스피에 집중됐습니다. 즉, 외국인은 대형 수출주를 덜어내면서 코스닥 중소형주로 이동하는 리밸런싱을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기관의 3.3조 원 매수는 구체적으로 어디로 향했는지가 핵심입니다. LG전자가 이날 상한가인 29.89% 급등으로 마감했습니다. 삼성전자 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로봇·자동화로 수혜가 이동한다는 논리가 작동했는데, 파업이 타결된 이후에도 주가는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기관 자금이 '파업 우려'가 아니라 '피지컬 AI 테마'를 산 것입니다. 삼성전기도 AI 칩 부품 수주 계약에 목표가가 160만 원까지 올라가며 이날 최고가를 경신했습니다.
반면 외국인이 매도한 쪽은 이미 많이 오른 삼성전자, SK하이닉스로 추정됩니다. RIA 계좌를 통해 엔비디아를 팔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산 개인 자금이 약 2조 원 국내에 복귀했다는 데이터가 나왔습니다. 외국인이 기관과 개인에게 삼성전자를 넘긴 구도입니다.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외국인은 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지금 팔았을까요. 엔비디아 실적이 확인된 직후에 반도체 대장주를 정리했다는 것은, 이 랠리가 이미 알려진 정보를 선반영했다는 판단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장에는 이 판단을 흔드는 데이터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4월 생산자물가가 전월 대비 또다시 상승하면서 28년 만에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습니다. 고유가와 반도체 가격 상승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입니다. 생산자물가가 이 속도로 오르면 소비자물가로 전가되고, 한국은행이 금리 인하 대신 동결 또는 인상 압박을 받습니다. 금리 인상 우려가 커지는 환경에서 코스피가 8% 오른 것은, 시장이 인플레이션 신호를 의도적으로 무시했다는 뜻입니다.
기관 3.3조의 전제가 무너지는 조건
오늘 기관 매수의 논리는 두 개의 전제 위에 서 있습니다. 첫째, 삼성전자 파업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됐다는 것. 둘째, 미국-이란 협상이 타결되면서 중동 리스크도 완화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 전제 모두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삼성전자 노사 잠정 합의는 조합원 투표라는 관문이 남아 있습니다. 주주단체는 이미 "성과급 명문화는 위법"이라며 가처분 신청을 예고했습니다. 1인당 6억 원의 성과급이 자사주로 지급될 경우, 발행 주식수 증가로 기존 주주의 지분이 희석됩니다. 파업 리스크가 사라진 자리에 주주 가치 훼손 논란이 들어선 것입니다. 과거 2023년 삼성전자 파업 협상 국면에서도 합의 이후 주가가 단기 조정을 받은 선례가 있습니다.
중동 변수는 더 열려 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에는 아직 국내 중소·중견 선사 선박 10척이 대기 중입니다. 금융위원회는 이날 손보사 10개사를 통해 전쟁보험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선박이 실제로 통과하지 못한다면 이 조치는 리스크 해소가 아니라 리스크 관리에 그칩니다. 유가가 배럴당 110달러를 유지하는 한, 생산자물가 상승 압력은 이어집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오는 28일 회의를 앞두고 있습니다. 설문조사 결과 전문가 다수는 5월 동결 후 7월 피봇을 예상하지만, 연내 2회 인상 가능성도 동시에 언급됐습니다. 원·달러 환율 1500원 근방의 압박이 유지된다면, 한은이 금리 인하 카드를 꺼내기 어렵습니다. 기관이 3.3조를 산 논리는 금리 동결 또는 인하를 전제로 합니다. 그 전제가 흔들리면, 오늘의 급등이 다음 조정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 랠리가 연장되는 조건도 명확합니다. 미국-이란 협상 타결이 공식 발표되면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아래로 내려온다면, 생산자물가 상승 경로가 꺾이고 한은의 금리 압박도 완화됩니다. 그 시나리오라면 코스피 8000선 재돌파는 구호가 아니라 계산 가능한 시나리오가 됩니다.
오늘 외국인이 1조를 팔면서 기관에 물량을 넘긴 것이 '고점 경고'인지, 아니면 '단순 리밸런싱'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하나입니다. 5월 28일 금통위가 어떤 신호를 내놓는지, 그리고 그 전에 유가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지입니다. 기관이 오늘 산 3.3조는 그 답이 나오기 전까지는 확신이 아니라 배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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