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7.1조 역대 최대 매도일|코스피는 왜 최고치였나?

· KRX

7500 돌파, 그리고 7조의 매도

외국인이 하루에 7조 1,724억 원어치를 내다 팔았습니다. 한국 증시 역사상 단 하루 외국인 순매도로는 가장 큰 규모입니다. 그런데 코스피는 그날 종가 기준 사상 최고치인 7,490.05로 장을 마쳤습니다. 7500선을 장중에 뚫고, 차익실현 매물에 밀려 7,257선까지 내려갔다가, 오후 들어 다시 끌어올려진 하루였습니다.

오전 9시, 지수는 단번에 7,531.88을 찍으며 장중 최고치를 새로 썼습니다. 곧이어 외국인의 매도가 밀려왔습니다. 삼성전자를 2조 7,800억 원, SK하이닉스를 2조 4,700억 원 각각 팔아치운 것입니다. 지수는 270포인트 이상 빠지며 7,200선 아래까지 내려갔습니다. 여기서 개인이 5조 9,913억 원을 사들였습니다. 기관이 1조 984억 원을 보탰습니다. 오후 장이 마감될 무렵, 삼성전자는 2.07% 오른 27만 1,500원, SK하이닉스는 3.31% 상승한 165만 4,000원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날 코스피 시장에서 354개 종목이 올랐고 503개 종목이 내렸습니다. 오른 종목보다 내린 종목이 많았는데, 지수는 1.43% 상승으로 마감됐습니다. 시가총액 상위 2개 종목이 지수를 혼자 끌어올린 하루였습니다.

글로벌 배경은 강했습니다. 일본 닛케이지수가 골든위크 연휴를 마치고 5.58% 폭등하며 역대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고, 6만 2,833선에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미국과 이란 간 종전 협상 기대감이 부각되면서 건설주가 일제히 급등했습니다. 삼성E&A가 21.51%, GS건설이 11% 상승했습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7.40% 올랐습니다. 반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종전 기대감에 8.09% 하락했고, 현대로템도 급락했습니다. 방산과 건설이 정반대 방향으로 갈린 하루였습니다.

씨티는 코스피 목표치를 8,500으로 제시했고, NH투자증권은 "연내 9,000포인트도 가능하다"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SK증권은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50만 원, SK하이닉스를 300만 원으로 각각 상향했습니다. 증권가가 목표가를 쏟아내는 동안, 외국인은 역대 최대 규모로 팔고 있었습니다. 이 둘이 같은 날 일어났다는 사실이 이날의 핵심입니다.

외국인이 팔 때 지수가 오르는 메커니즘

외국인이 역대 최대로 팔았는데 지수가 오른 것은 단순히 개인이 많이 샀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수급의 무게중심이 바뀌었다는 신호입니다.

한국 증시는 오랫동안 외국인 수급에 민감했습니다. 외국인이 대규모로 이탈하면 지수가 급락하는 것이 반복됐습니다. 2020년 3월 코로나 쇼크, 2022년 금리 인상 충격 때 외국인이 대규모 매도를 쏟아낼 때마다 코스피는 수백 포인트씩 빠졌습니다. 그런데 이날은 7.1조가 빠져나갔는데도 지수가 최고치로 마감됐습니다.

그 배경에는 국내 투자자 저변의 변화가 있습니다. 개인 투자자의 직접 주식 투자 규모는 코로나 이후 급속히 커졌습니다. ISA 계좌 자산이 15조를 돌파했고, IMA 가입자 기반도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코스피가 4,300선에서 7,490선까지 오른 올해 상승분의 상당 부분을 개인이 받아낸 것입니다. '예금을 깨고 총알을 마련한다'는 표현이 뉴스에 반복적으로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이 메커니즘에는 전제가 있습니다. 개인의 매수가 지속되려면 주가에 대한 기대가 꺼지지 않아야 합니다. 오늘 외국인이 판 주식을 개인이 받아낸 것처럼, 내일도 외국인이 팔면 개인이 또 받아낼 수 있느냐는 질문이 남습니다.

공매도 수치는 이 긴장을 숫자로 보여줍니다. 코스피의 공매도 순보유 잔고는 이미 20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대차거래잔고는 180조 6,284억 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180조를 돌파했습니다. 코스피가 6.45% 급등하던 날 하루에만 대차잔고가 5조 8,191억 원 늘었습니다. 하락에 베팅하는 세력이 상승 속도에 맞춰 실탄을 쌓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외국인이 오늘 판 7.1조는 차익실현일 수도 있고, 공매도를 감안한 헤지 포지션 청산일 수도 있습니다. 두 경우의 이후 경로는 전혀 다릅니다.

여기서 반도체 쏠림이 문제가 됩니다. 코스피 상승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반도체를 제외하면 코스피는 사실상 4,100선이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입니다. 354개 종목이 오르고 503개 종목이 하락한 날, 지수가 1.43% 올랐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합니다. 코스닥은 이날 0.91% 하락했습니다. 올해 코스피 상승률은 71.35%인데 코스닥은 27.98%에 그칩니다. 두 지수의 하루 등락 격차인 6.74%포인트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역대 최대 수준입니다.

다음 변수: 외국인이 돌아오는 조건, 혹은 멈추지 않는 조건

외국인이 오늘 7.1조를 팔았지만, 코스피가 버텼다면 두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합니다.

첫 번째는 외국인이 환율 안정과 글로벌 이익 모멘텀을 확인하고 재유입되는 경우입니다. 원·달러 환율은 이날 1.1원 내린 1,454.0원에 마감됐습니다. 외국인 통합계좌 서비스가 증권사들 사이에 경쟁적으로 출시되고 있어 외국인 소액 투자자 유입의 구조적 경로가 생겼습니다. 씨티가 제시한 8,500선, NH의 9,000선 전망이 실현되는 경로는 이 경우입니다.

두 번째는 외국인이 추세적으로 차익실현을 이어가는 경우입니다. 코스피가 연초 4,300선에서 7,490선까지 73.7% 올랐습니다. 버핏지수(시가총액/GDP)는 256%까지 급등했습니다. 공매도 잔고 20조와 대차잔고 180조는 언제든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 잠재 매도 물량입니다. 개인이 이 물량을 얼마나 더 받아낼 수 있느냐가 변수입니다.

과거 유사 사례가 있습니다. 2021년 1월 한국 증시가 3,266선까지 급등하던 시기, 외국인이 대규모 매도를 이어갔음에도 개인과 기관의 매수로 지수가 버텼습니다. 당시도 증권가는 3,500, 4,000 전망을 쏟아냈습니다. 이후 외국인 매도는 지속됐고, 지수는 정점 이후 수개월에 걸쳐 조정을 받았습니다. 다만 현재는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이 1조 달러를 넘어서며 세계 11위권에 올라섰고, SK하이닉스의 HBM 수요는 구조적으로 달라진 국면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검증해야 할 숫자가 있습니다. 내일 외국인 순매도 규모가 3조 원 이하로 줄어드는지, 혹은 오늘보다 더 늘어나는지입니다. 7.1조라는 역대 최대 기록이 단발성이라면 개인 매수세의 승리입니다. 그러나 같은 규모의 매도가 연속 이틀 이상 이어진다면, 개인의 실탄이 버텨낼 수 있는 임계치를 시험하게 됩니다.

코스피 7,490은 오늘 개인이 지켜낸 숫자입니다. 하지만 외국인이 7.1조를 팔고도 이 숫자가 유지됐다는 사실을 내일의 외국인이 매도 규모를 늘리는 신호로 읽을 것인지, 줄이는 신호로 읽을 것인지는 아직 열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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