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인 5.5조 매도|코스피 최고치 4연속의 진짜 매수자는?

· KRX

7498, 사상 최고치로 끝난 하루

외국인이 5조 5539억 원을 팔아 치운 날, 코스피는 사상 최고치로 장을 마쳤습니다. 이날은 한국거래소 기준 외국인 역대 3번째 순매도 규모였습니다. 그 물량을 고스란히 받아낸 것은 개인 3조 9466억 원과 기관 1조 5403억 원이었습니다.

오전 9시 직후 코스피는 7318.96까지 밀렸습니다. 장 초반 낙폭은 1.82%에 달했고, 불과 24시간 전까지 나흘 연속 최고치를 쌓아 올리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꺾이는 듯했습니다. 배경은 두 가지였습니다. 미국이 간밤 이란 일부 지역을 공습했고, 이란은 휴전 협정 위반이라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 긴장이 재점화되자 국제유가가 반등했고, 원·달러 환율은 장 초반부터 상승폭을 키워 결국 17.7원 오른 1471.7원에 마감했습니다. 반도체 차익 실현도 겹쳤습니다. 삼성전자는 장중 3%대, SK하이닉스도 2%대까지 밀렸습니다.

여기까지는 하락 마감을 가리키는 모든 조건이 갖춰진 하루였습니다. 그런데 오후 들어 전혀 다른 흐름이 만들어졌습니다.

현대차가 급반등의 진원지였습니다. 보스턴다이내믹스가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개발형 모델의 기계체조 영상을 공개하면서 현대차는 장중 최고 11% 가까이 올랐습니다. 현대오토에버는 상한가, 현대모비스는 15%, 현대글로비스는 8%대 강세였습니다. 레인보우로보틱스도 12% 넘게 뛰었습니다. 코스닥 대형주에서도 코오롱티슈진이 11%대로 호응했습니다. 반도체가 쉬는 사이 로봇·자동차 업종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순환매가 하락을 막아선 셈입니다. 코스피는 결국 전일 대비 7.95포인트, 0.11% 오른 7498.00으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나흘 연속 종가 기준 사상 최고치였습니다.

기관 순매수 1.5조의 정체

이날 가장 주목해야 할 숫자는 기관 순매수 1조 5403억 원 가운데 금융투자 부문 1조 8090억 원이라는 수치입니다. 이 금액이 코스피 반전을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금융투자의 순매수 규모가 기관 전체보다 컸다는 것은 다른 기관은 순매도였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금융투자 1.8조의 상당 부분은 ETF 유동성공급자(LP) 물량입니다. 개인 투자자가 ETF를 사면, LP가 의무적으로 기초자산을 매수해야 합니다. 그 물량이 거래소 집계에서 금융투자의 '순매수'로 잡힙니다. 즉, 기관 1.5조의 실질적 원천도 개인 자금이었습니다.

외국인이 삼성전자를 2조 5460억 원 팔았고, 개인은 같은 종목을 2조 2000억 원 매수했습니다. SK하이닉스도 외국인이 2조 403억 원 매도하자 개인이 1조 4215억 원을 받아냈습니다. 두 종목 합산으로만 외국인 매도 물량의 약 80%를 개인이 직접 흡수한 셈입니다. 그것도 연속 최고치를 기록하던 주가 구간에서입니다.

전날인 7일에도 외국인은 7조 1000억 원 이상을 팔며 역대 최대 순매도를 기록했지만 코스피는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이틀 연속으로 외국인이 쏟아낸 물량을 개인이 받아내는 구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역대 사례를 보면 이런 교차 패턴은 단기 고점 직전에도 나타났고, 랠리 연장 직전에도 나타났습니다. 같은 형태가 정반대 결론으로 끝난 경우가 공존합니다.

다만 지금 상황에는 추가 변수가 하나 있습니다. 같은 날, 블랙록이 운용하는 '아이셰어즈 MSCI 한국 ETF(EWY)'에서 하루 만에 4억 900만 달러, 약 6000억 원이 빠져나갔습니다. EWY 출시 26년 만에 단 하루 기준 역대 최대 유출입니다. 5거래일 연속으로는 9억 달러, 1조 3000억 원이 넘습니다. 현물 주식을 국내 개인이 사들이는 동안, 미국 투자자들은 한국 ETF를 같은 속도로 털어내고 있었습니다.

개인 매수가 외인 매도를 이길 수 있는 조건

이 교차 구도가 지속 가능한지를 가늠하는 기준은 세 가지로 압축됩니다.

첫째는 실적입니다. 골드만삭스는 이날 코스피 목표치를 9000포인트로 상향했습니다. 지난달 18일 8000을 제시한 지 20일 만입니다. 근거는 반도체 메모리 업종의 이익 성장률이 2026년 한국 기업 전체 이익을 300%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하이퍼스케일러의 AI 투자 확대로 D램·낸드 공급 부족이 사상 최고 수준이고, 연산 집약적 AI 에이전트 확산이 메모리 업체의 수익성을 장기간 뒷받침할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밸류업 지수도 같은 흐름에 있습니다. 2024년 9월 산출 이후 누적 수익률은 200.4%로 같은 기간 코스피 154.5%를 약 46%포인트 앞질렀습니다. 4월 한 달에만 130개 기업이 신규 공시에 참여해 누적 718개사, 전체 시가총액의 77.4%가 밸류업 체계 안에 들어왔습니다.

이 수치들이 유효한 동안 개인 매수의 논리는 성립합니다. 반대 조건은 이렇습니다. 중동 교전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이어진다면 유가가 급등하고 수출 물류 비용이 오르면서 반도체 기업 마진을 압박합니다. EWY에서 자금이 빠져나가는 속도가 더 빨라지면 해외 투자자의 한국 비중 축소 신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다음 주 나올 주요 반도체 기업 2분기 가이던스가 골드만삭스 전망치에 미치지 못한다면 9000 목표의 전제 자체가 흔들립니다.

방향 지표로 볼 때 단기 흐름은 개인 자금이 지수 하단을 지지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판단은 하나의 조건에 기대고 있습니다. 외국인이 빠진 자리를 개인이 채울 수 있으려면 실적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내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2분기 잠정 실적 발표가 이 전제를 검증하는 첫 번째 관문입니다. 그 숫자가 기대를 벗어날 경우, 지금 7498을 개인이 받아내는 이 구도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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