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궁II, UAE 실전 운용|랠리의 끝인가, 구조 변화의 시작인가

· KRX

종전 루머 하루, 5% 급락의 구조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하루 만에 5%대 급락했습니다. 이유는 전쟁 종식 기대감이었습니다. 총알 한 발 날아가지 않았는데, 협상 루머 하나로 주가가 그만큼 흔들렸습니다.

이 장면이 지금 방산주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을 압축하고 있습니다. 방산주의 상승분이 지정학 리스크 프리미엄에만 기대고 있다면, 협상 테이블이 열리는 순간 그 프리미엄은 사라집니다. 문제는 그 반대 방향의 논리도 동시에 성립한다는 점입니다.

수주잔고 37.2조원, 약 4.6년치 일감이 이미 확보된 상태에서 주가가 루머에 5% 빠진다면, 그 하락은 펀더멘털 훼손이 아닙니다. 감정적 매도입니다. 그리고 그 간극이 바로 지금 방산주를 분석하는 출발점이 됩니다.

실전에서 증명된 천궁II

UAE가 이란의 공격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천궁II를 운용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정보가 갖는 무게는 단순한 수출 실적과 다릅니다.

방공 미사일 시스템은 실전 운용 데이터가 없으면 신뢰를 얻기 어렵습니다. 미국의 패트리엇이 수십 년간 시장을 지배해온 배경 중 하나가 바로 실전 검증 이력입니다. 천궁II가 걸프 지역에서 실제 교전 환경에서 운용됐다는 것은, K방산 시스템의 마케팅 자산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의미입니다.

WSJ는 사우디가 천궁II 인도 일정 조정 가능성을 타진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미 계약된 물량을 더 빨리 받고 싶다는 요청입니다. 공습으로 방공 탄약 재고가 빠르게 소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끝나도 소진된 재고는 채워야 합니다. 이것이 지정학 프리미엄과 다른 차원의 수요입니다.

호르무즈 변수, 미·중 갈등의 우회로

이번 중동 긴장을 단순한 미·이란 대결로 읽으면 중요한 맥락을 놓칩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의 38%가 중국으로 향합니다. 신한투자증권 이동헌 연구위원이 지적한 대로, 미국의 대이란 압박은 사실상 중국의 에너지 공급선을 겨냥한 간접 압박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 구도가 성립한다면, 중동 리스크는 미·중 전략 경쟁이 지속되는 한 구조적으로 유지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협상이 타결돼도 다음 긴장의 씨앗은 이미 심어져 있는 셈입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움직임도 이 맥락에서 읽힙니다. 한 달 사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집중 매도하면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7004억원을 순매수했습니다. 반도체 지분율이 코로나19 이후 최저치인 48%까지 내려간 것은 단기 차익 실현이 아닙니다. 포트폴리오 전략 자체를 바꾼 것입니다. '한국 시장 이탈'이 아니라 '섹터 재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입니다.

현대로템의 비대칭 포지션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LIG넥스원이 시장의 주목을 받는 동안, 현대로템은 다른 각도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삼성증권은 현대로템이 다른 대형 방산주 대비 저평가 상태라는 판단으로 목표주가를 상향했습니다. 나신평도 장·단기 신용등급을 AA-로 올렸습니다.

신용등급 상향은 투자 심리를 넘어 실질적인 자금 조달 비용에 영향을 줍니다. 방산 수주는 장기 계약이고, 선행 투자가 필요합니다. 신용등급이 오르면 그 비용이 줄어들고, 이는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현대위아 방산 사업이 현대로템에 편입되면서 그룹 내 방산 역량이 한 곳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분산됐던 역량이 단일 법인으로 모이면 수주 대응 속도와 계약 협상력이 달라집니다. 랠리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LIG넥스원 중심으로 형성됐다면, 현대로템은 상대적으로 덜 반영된 구간에 있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두 개의 시나리오, 하나의 변수

지금 방산주에는 두 개의 힘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지정학 리스크 프리미엄, 다른 하나는 실적 기반의 수주잔고입니다. 이 둘이 같은 방향을 가리킬 때 주가는 강하게 오릅니다. 반대로 협상 기대감이 커지면 첫 번째 힘이 빠지면서 두 번째 힘만 남습니다.

문제는 두 번째 힘만으로도 충분한가입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경우, 4.6년치 수주잔고와 하반기부터 확대되는 폴란드 외 지역 물량, 천무 미사일 실적 인식을 고려하면 실적 기반은 단단합니다. 1분기 수주만 3.7조원이 확인됐습니다. 협상이 타결돼도 이미 계약된 일감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방 시나리오는 명확합니다. 중동에서 실질적인 종전 합의가 이뤄지고, 동시에 유럽 방산 수요가 예상보다 빠르게 둔화된다면, 지정학 프리미엄이 한꺼번에 해소될 수 있습니다. 그때는 실적 가시성이 높은 종목과 그렇지 않은 종목 사이의 차별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상방 시나리오의 핵심 조건은 천궁II의 실전 검증이 추가 수주로 연결되는지 여부입니다. UAE 운용 사례가 확산되면서 걸프 국가들의 추가 발주로 이어진다면, 이번 랠리는 지정학 테마가 아닌 구조적 수요 재평가의 시작점이 됩니다. KRX 건설지수가 전쟁 발생 후 23.8% 오른 배경에는 전쟁 후 재건 수요까지 포함돼 있습니다. 방산도 같은 논리가 적용될 수 있습니다.

결국 이번 방산주 사이클을 가르는 변수는 협상 타결 여부 그 자체가 아닙니다. 실전 검증된 K방산 시스템이 중동 전역의 방공 재고 재편 수요를 끌어당길 수 있는가, 그 여부가 이 랠리의 성격을 결정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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