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25년 만에 1200 돌파|코스피 외인 1.9조 던진 날
코스닥 1200의 역설
외국인이 코스피에서 1조 9천억 원을 순매도한 날, 코스닥은 25년 만에 1200선을 돌파했습니다. 두 시장이 같은 날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인 데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반도체 투톱,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1분기 실적이 공개된 직후였습니다. 시장은 이미 호실적을 주가에 선반영한 상태였고, 실적 확인 이후 차익실현 매물이 쏟아졌습니다. 삼성전자는 장중 2.45% 하락했고 SK하이닉스도 소폭 밀렸습니다. 외국인은 주로 이 두 종목을 중심으로 매도를 집중시켰습니다.
그 자금이 어디로 향했는지가 핵심입니다. 반도체 대형주에서 이탈한 수급은 코스닥 반도체 소부장으로 이동했습니다. SFA반도체가 하루에 22% 올랐고, 제주반도체는 18%나 급등했습니다. 외국인과 기관이 코스닥에서 각각 7292억 원, 1877억 원을 순매수하는 동안 개인만 9천억을 팔아치웠습니다.
코스닥 1200선 돌파는 감정적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2000년 8월 닷컴 버블 정점 이후 25년 8개월 만의 복귀입니다. 그때와 지금의 차이는 이겁니다. 당시에는 기대만 있었지만, 지금은 반도체 슈퍼사이클이라는 실적 기반이 있습니다. 노무라증권은 SK하이닉스의 2분기 영업이익이 1분기 대비 79% 증가한 68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D램과 낸드 가격은 각각 51%, 65% 추가 상승이 예상됩니다.
다만 코스닥 상승이 구조적 전환인지, 순환매의 일시적 폭발인지는 아직 판단이 이릅니다. 다음 주 코스닥이 1200선을 종가 기준으로 지킬 수 있는지가 첫 번째 확인 포인트입니다.
증권사 퀀텀점프와 중동의 역설
미국과 이란의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같은 달, 국내 5대 증권사의 1분기 합산 영업이익 전망치는 3조 8850억 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전년 동기 1조 8천억 원의 두 배가 넘는 수치입니다. 전쟁이 증권사를 먹여 살린 구조입니다.
역설의 메커니즘은 거래대금에 있습니다. 중동 전쟁이 터지자 변동성이 커졌고, 변동성이 커지자 개인 투자자들은 줄어드는 대신 저가 매수에 뛰어들었습니다. 3월 한 달 일평균 거래대금은 139조 원까지 폭증했습니다. 10년 평균 18조 원과 비교하면 7배가 넘습니다. 브로커리지 수수료가 폭발한 겁니다.
NH투자증권은 1분기 영업이익 6367억 원으로 분기 사상 최대 기록을 세웠습니다. KB증권 순이익은 전년 대비 93% 급증했고, 신한투자증권은 167% 늘었습니다. 하나증권조차 순이익이 37% 올랐습니다. 은행 순이익 증가율이 5%대에 그친 것과 대조됩니다.
이 흐름을 더 강화시킨 것이 있습니다. 레거시 반도체의 귀환입니다. 대만 UMC가 8인치 웨이퍼 가격을 10~15% 올리겠다고 고객사에 통보했습니다. AI 서버에 들어가는 전력관리칩 수요가 급증하면서 구형 공정의 가동률이 85~90%까지 치솟은 탓입니다. 이 소식에 국내 8인치 파운드리 기업 DB하이텍의 주가는 최근 한 달간 80% 이상 올랐습니다. 첨단 반도체의 수혜가 성숙 공정으로, 다시 후공정 장비·소재 업체로 낙수되는 구조가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낙관 구조에 균열이 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 대치는 8주째 이어지고 있고, 브렌트유는 배럴당 105달러를 넘었습니다. IEA는 하루 1300만 배럴의 공급 차질이 역사상 최대 에너지 안보 위협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유가가 계속 오르면 금리 인하 기대는 멀어지고, 그 순간 지금의 증시 호황 논리는 흔들립니다.
K뷰티와 전력주, 다음 주자의 조건
코스피가 숨고르기에 들어간 날, 전혀 다른 두 섹터가 동시에 뛰었습니다. 화장품주와 전력기기주입니다.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뒤에는 같은 구조가 있습니다. 대형주 실적 소화 이후 수급이 실적 가시성이 높은 섹터를 찾아 이동한 겁니다.
화장품 업종 전체가 4.84% 올랐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은 8.85% 뛰었고 코스맥스도 4% 올랐습니다. 올해 1월부터 4월 20일까지 화장품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20.7% 증가했습니다. 미국과 유럽 모두 수출 호조입니다. 중동 전쟁으로 지정학 리스크가 높아진 상황에서도 K뷰티 수출이 꺾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으로 읽혔습니다.
전력주는 다른 이유로 올랐습니다.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 기대가 식지 않으면서 HD현대일렉트릭이 하루 12% 올랐습니다. 인텔이 전날 깜짝 실적을 발표하며 데이터센터·AI 부문이 전년 대비 22% 성장했다는 사실이 AI 인프라 수요의 실체를 다시 확인시켜줬습니다. 에너지 안보 위기가 오히려 원자력과 신재생 에너지 투자 가속의 논리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현재 시장의 무게 중심은 반도체 슈퍼사이클과 AI 인프라 투자가 동시에 진행되는 구조입니다. 이 판단이 유효한 조건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호르무즈 협상이 진전을 보여 유가가 100달러 아래로 안정되어야 합니다. 둘째, SK하이닉스의 2분기 실적이 노무라가 예측한 68조 원 수준에 근접해야 합니다. 이 두 조건이 동시에 충족된다면 코스피 6500 재탈환과 코스닥 1200 안착이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 시나리오도 구체적으로 봐야 합니다. 호르무즈 봉쇄가 장기화되어 유가가 120달러를 넘고 금리 인상 우려가 재부상한다면, 지금의 증시 수급 논리는 반전될 수 있습니다. 그 경우에도 화장품과 방산은 내수·수출 분리 논리로 버틸 수 있지만, 반도체와 전력기기의 조정은 피하기 어렵습니다.
내일 확인해야 할 숫자는 두 가지입니다. 브렌트유의 100달러 선 유지 여부, 그리고 코스닥 종가 기준 1200선 지지 여부입니다. 이 두 숫자가 다음 주 증시 방향을 결정할 가능성이 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