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26년 만의 1200|외국인 2조 매도한 날의 분리

· KRX

코스피가 멈춘 날, 코스닥이 움직였습니다

외국인이 코스피에서 1조 9,495억 원어치를 팔아치운 날이었습니다. 삼성전자는 2.23% 내렸고, SK하이닉스도 0.24% 하락했습니다. 기아는 3.16%, 현대차는 3.57% 빠졌습니다. 시가총액 상위 종목이 줄줄이 약세를 보이는 가운데 코스피는 결국 전 거래일 대비 0.18포인트 내린 6,475.63으로 장을 마쳤습니다. 사흘 연속 최고치를 경신하던 흐름이 멈춘 것입니다.

그런데 같은 날 코스닥은 2.51% 올라 1,203.84에 마감했습니다. 2000년 8월 4일 이후 약 25년 8개월 만의 종가 기준 1,200선 돌파입니다. 닷컴 버블 이후 처음입니다.

외국인이 코스피 대형주를 팔아 치운 그 돈이 어디로 흘렀는지, 바로 그것이 오늘 시장의 핵심 질문입니다.

중동 리스크가 배경에 있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 긴장이 고조되면서 국제유가가 4거래일 연속 급등했고, 뉴욕증시는 전날 3대 지수 모두 하락 마감했습니다. 미-이란 협상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이었습니다. 통상이라면 이런 지정학적 리스크는 증시 전반을 짓누릅니다. 그런데 코스닥은 달랐습니다.

이날 코스닥 시장에서 외국인은 7,321억 원을 순매수했습니다. 기관도 1,876억 원 순매수했습니다. 개인만 9,015억 원을 팔았습니다. 코스피에서 2조 원 가까이 팔던 외국인이, 코스닥에서는 7,300억 원 넘게 사들인 것입니다.

대형주를 팔고 소부장으로 이동한 이유

이 움직임을 이해하려면 이번 주 코스피 상승의 흐름을 먼저 봐야 합니다. 코스피는 지난 20일부터 4거래일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주도한 것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대형주였습니다. SK하이닉스는 23일 1분기 영업이익 37조 6,103억 원을 발표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고, 노무라증권은 24일 목표주가를 234만 원으로 상향하며 2분기 영업익 68조 원을 전망했습니다.

문제는 대형주가 이미 많이 올랐다는 점입니다. SK하이닉스는 실적 발표 직후 차익 실현 매물에 눌렸습니다. 외국인이 2조 원 가까이 팔면서도 코스피 지수가 사실상 보합에 그친 것은, 개인과 기관이 각각 1조 1,832억 원, 8,054억 원을 받아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자금의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반도체 대형주 실적 서프라이즈가 확인되면, 그 수혜는 소부장 기업 실적 개선으로 이어집니다. 외국인이 코스닥에서 집중 매수한 것도 이 논리였습니다. 삼천당제약(8.29%), 에코프로비엠(1.22%), 알테오젠(3%) 등 코스닥 주요 종목이 동반 상승했습니다. 화장품 섹터도 힘을 보탰습니다. 1분기 화장품 수출이 31억 달러로 분기 최대를 기록했다는 소식에 마녀공장이 22.96%, 뷰티스킨은 30% 상한가를 치는 등 K뷰티 인디 브랜드 전체가 들끓었습니다.

다만 여기서 조건 하나가 붙습니다. 이번 코스닥 상승이 지속되려면 소부장·바이오 기업들의 실적이 실제로 따라와야 합니다. 증권가에서는 "유동성 유입만으로는 1,200선 안착이 어렵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 코스닥 시장에 외국인이 올해 누적으로 순매수한 금액은 2조 4,000억 원입니다. 코스피 대형주 차익 실현 자금이 코스닥으로 흘러드는 이 흐름이, 실적 근거 없이도 유지될 수 있을지가 첫 번째 변수입니다.

1200 안착인가, 반납인가 — 다음주 실적 시즌이 답합니다

코스닥 1200선 돌파는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2000년 닷컴 버블 당시 코스닥 최고치는 2,925였습니다. 이후 버블 붕괴로 폭락했고, 25년 넘게 1200선을 한 번도 종가로 넘지 못했습니다. 오늘 1,203.84는 그 심리적 저항선을 처음으로 허문 수치입니다.

역사적 유사 사례를 보면 조심스러운 지점이 있습니다. 2021년 코스닥이 1,000선을 돌파했을 때도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며 빠르게 올랐지만, 이후 글로벌 금리 인상 국면에서 반토막 났습니다. 당시와 지금의 차이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반도체 대형주 실적이 사상 최대를 기록하며 소부장 낙수효과의 근거가 생겼습니다. 둘째, 외국인이 코스닥을 올해 누적 2조 4,000억 원 순매수하며 지속적인 자금 유입이 확인됩니다.

이 흐름이 유지되는 조건은 하나입니다. 다음 주 본격화되는 코스닥 기업들의 1분기 실적 발표입니다. 반도체 소부장과 바이오 기업들이 시장 전망치에 부합하는 실적을 내놓는다면, 외국인 수급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증권가는 다음주 한미 양국 실적시즌과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진단을 핵심 변수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반면 이 흐름이 깨지는 조건도 분명합니다. 중동 전쟁이 격화되거나 유가가 추가 급등할 경우, 외국인은 다시 코스닥을 이탈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대차거래잔고는 167조 5,276억 원으로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를 갈아치운 상태입니다. 공매도 세력이 코스닥 1200선 직후 차익 실현에 나설 실탄이 충분히 쌓여 있습니다.

현재까지의 근거는 낙수효과 유입 흐름 지속 쪽으로 기울지만, 이는 다음 주 코스닥 소부장·바이오 기업 실적이 뒷받침될 때만 성립합니다. 실적이 실망을 준다면, 167조 대차잔고가 그 압력을 고스란히 드러낼 것입니다.

1,200선을 종가로 넘은 코스닥이 다음 주에도 이 선 위에서 마감할 수 있을지. 그것을 판가름할 첫 번째 숫자는 다음 주 초 발표될 코스닥 주요 기업들의 분기 실적입니다.

Link copi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