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6400 돌파|구조 바뀐 건지, 모멘텀인지
시장 구조의 전환
전쟁 소식에도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습니다. 미국과 이란의 2차 협상이 불발됐다는 소식이 나왔지만, 지수는 오히려 올랐습니다. 4월 22일 코스피는 6417.93으로 마감하며 이틀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시장이 지정학 뉴스에 반응을 멈춘 이유가 있습니다. 투자자들이 시선을 외부 위험에서 기업 실적으로 옮겼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의 1분기 어닝 서프라이즈가 그 전환점이었습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실적과 수주 모멘텀이 지수 하단을 지지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나 이 상승의 배경에는 하루짜리 이벤트보다 더 깊은 구조 변화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상법 개정을 통해 기업들의 지배구조가 바뀌기 시작했고,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제도적 기반을 만들었습니다.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국내 상장사 60곳이 결정한 자사주 소각 규모는 42조 5천억 원입니다. 지난해 연간 소각 규모 13조 2천억 원의 세 배를 넉 달도 안 돼 넘어선 것입니다.
외국인 수급도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3월 한 달 동안 35조 8천억 원을 순매도했던 외국인이 4월 들어 1조 4천억 원을 사들이며 순매수로 전환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대형주에 자금이 집중되는 흐름입니다. SK하이닉스는 AI 메모리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청주에 19조 원을 투자해 어드밴스드 패키징 전용 팹 착공을 공시했고, 이날 LG이노텍은 17.65%, 이수페타시스는 21.17% 급등하며 반도체 기판 공급 부족 기대를 반영했습니다.
MSCI 헨리 페르난데즈 회장은 이날 "한국은 경제 수준만으로는 이미 선진국"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선진국 지수 편입의 장벽으로 원화 현물환 거래 제약, 헤지 수단 부족, 공매도 규제 등을 구체적으로 지목했습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되려면 수치가 아닌 시장 작동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협상 결렬의 이중효과
미-이란 2차 협상 결렬이 국내 증시에서는 상반된 결과를 동시에 만들어냈습니다. 종전 기대감이 걷히자 중동 재건 수혜를 기대하던 현대건설은 3.49%, GS건설은 3.25% 하락했습니다. 반면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수주 확대 기대가 높아지는 방산주는 정반대 흐름을 보였습니다.
LIG디펜스앤에어로스페이스는 이날 12.21% 급등하며 주가 100만 원 이상 황제주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전쟁 직전인 2월 말과 비교하면 100%가 넘는 상승폭입니다. 이 회사가 사우디아라비아와 UAE에 수출한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 천궁-II가 이란 측 미사일 요격 작전에 실전 투입돼 성능을 입증했기 때문입니다. 채운샘 하나증권 연구원은 "패트리엇 요격미사일 공급 부족이 지속되고 있어 천궁-II 수출 확대 기대는 당분간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알루미늄 시장에도 파장이 이어졌습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지속되며 중동산 알루미늄 공급이 막히자, 관련주들이 최대 29% 급등했습니다. 씨티는 공급 차질이 8~9주 이상 지속될 경우 브렌트유가 배럴당 130달러에 고착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원-달러 환율은 협상 결렬 소식에 7.5원 올라 1476원으로 마감했습니다. KB국민은행 이민혁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환율은 통계적으로 상당한 오버슈팅 구간"이라며 "2차 협상 재개 시 하락 조정, 결렬 지속 시 오버슈팅이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다음 변곡점
현재까지의 근거를 종합하면, 코스피의 구조적 상승 기조는 유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판단의 근거는 세 가지입니다. 기업 실적 개선이 가시화되고 있고, 자사주 소각이라는 제도적 주주환원 흐름이 이미 시작됐으며, 외국인 수급이 방향을 전환했습니다. 5월부터 도입될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는 상승 국면에서 추가 탄력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판단은 두 가지 조건이 유지될 때만 유효합니다. 하나는 미-이란 전선이 전면전으로 확대되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원화가 현재의 1470~1480원대에서 안정되는 것입니다. 만약 이란이 호르무즈 봉쇄를 강화하거나 군사적 대응에 나선다면, 유가 급등과 환율 재상승이 맞물리며 외국인 매수세가 다시 이탈할 수 있습니다. MSCI 페르난데즈 회장도 "시장이 전쟁 리스크를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내일 확인해야 할 변수는 두 가지입니다. 이란의 공식 입장 발표 여부와, 23일 오전 5시 예정된 테슬라 실적 발표입니다. 테슬라 실적은 AI 수요 방향성을 재확인하는 글로벌 신호탄이 될 수 있습니다. 현재 코스피 상승을 이끄는 주도 업종이 반도체라는 점에서, 테슬라가 AI 투자 기조를 재확인한다면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 추가 매수 명분이 생깁니다. 반대로 이란이 봉쇄 강화 입장을 공식화한다면, 방산주와 알루미늄주는 다시 뛰겠지만 지수 전반은 저항에 부딪힐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