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6600 돌파|골드만삭스가 놓친 변수

· KRX

AI가 바꾼 판

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6600선을 넘어 6615.03으로 마감했습니다. 시가총액은 역대 최초로 6000조 원을 돌파했습니다. 그런데 이 숫자보다 더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전쟁이 끝나지 않았는데 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는 사실입니다.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은 이번 주도 교착 상태입니다. 호르무즈 해협 긴장이 재고조되며 유가는 6% 급등했고, 달러·원 환율도 다시 1470원대로 올랐습니다. 그럼에도 코스피는 이달에만 22% 반등했습니다. 미국 나스닥의 13%, 일본 닛케이의 14%를 훌쩍 넘는 반등입니다.

이 역설의 핵심에는 SK하이닉스(000660)가 있습니다. 23일 1분기 실적 발표를 앞둔 SK하이닉스는 이날 장중 130만 원을 터치했습니다. 증권가는 1분기 영업이익을 35조~37조 원으로 추정합니다. 전년 동기 대비 400% 이상 증가한 분기 역대 최대 실적입니다. 영업이익률 추정치는 64%에 달합니다.

이 실적을 만든 것은 고대역폭 메모리, 즉 HBM입니다. 엔비디아 AI 서버 한 대에 탑재되는 HBM 용량은 2024년 455GB에서 올해 1689GB로 늘어났습니다. AI 서버 출하량 자체도 같은 기간 116만 대에서 175만 대로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수요가 꺾일 구조가 아닌 것입니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차세대 AI 플랫폼 베라 루빈향 소캠2 192GB 제품의 본격 양산도 시작했습니다.

이 흐름은 SK하이닉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미반도체(042700)가 이날 26% 급등했고, 반도체 소부장 종목 전반이 외국인 매수세를 받으며 고공행진했습니다. SK그룹주 시가총액은 사상 처음으로 1000조 원을 넘었고, 그 80%를 SK하이닉스 단일 종목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정학 면역과 외국인 복귀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데 외국인이 돌아왔습니다. 이것이 이번 랠리를 이해하는 두 번째 열쇠입니다.

2월 28일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발발하면서 코스피는 급락했습니다. 이후 외국인은 대규모 매도세를 이어갔고, 개인 투자자들은 이달에만 14조 7000억 원어치를 순매도했습니다. 역대 월간 최대 규모를 향하고 있는 수치입니다. 그런데 외국인과 기관은 이날 2조 원 이상을 순매수했습니다. 개인이 팔고 외국인이 사는 구도입니다.

시장이 지정학 리스크에 면역력을 키운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호르무즈 긴장이 반복될수록 증시에 미치는 충격이 줄어들었습니다. 신영증권 연구원은 "지정학 리스크는 이미 반복적으로 가격에 반영된 이벤트에 가까워졌다"고 분석했습니다. 둘째, 반도체 업황이 지정학 변수와 독립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나지 않아도 HBM 수요는 늘고, AI 설비투자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 흐름은 한국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닛케이지수도 이날 종가 기준 사상 처음으로 6만 선을 돌파했습니다. 신흥국 증시 전반도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습니다. AI 붐과 지정학 긴장 완화 기대감이 맞물리며 글로벌 자금이 아시아로 유입되는 구조입니다.

골드만삭스는 이 흐름의 논리적 귀결을 숫자로 제시했습니다. 코스피 12개월 목표치를 기존 7000에서 8000으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근거는 세 가지입니다. 올해 코스피 기업 이익 전망치가 220% 성장한다는 점, 현재 선행 PER이 7.5배로 과거 고점 평균인 10배 대비 저평가 상태라는 점, 그리고 밸류업 정책과 주주환원 강화가 아직 주가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노무라와 JP모간도 각각 8000, 7500을 목표치로 제시한 상태입니다.

남은 변수들

여기서 멈춰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랠리의 방향은 분명해 보이지만, 속도를 흔들 수 있는 변수들이 남아 있습니다.

첫 번째는 실적 발표 이후의 '셀 온' 가능성입니다. TSMC와 ASML은 모두 호실적 발표 이후 주가가 급락하는 흐름을 보였습니다. 코스피도 펀더멘털에 대한 기대가 급격히 선반영된 만큼, 실적 이벤트 이후 차익실현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BNK투자증권은 SK하이닉스 투자의견을 '보유'로 하향하며 하반기 수요 둔화 가능성을 지적했습니다.

두 번째는 성과급 변수입니다. SK하이닉스는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확정했습니다. 순수 영업이익 39조 5000억 원에서 4조 원이 빠질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005930)는 노조가 영업이익의 15%, 약 40조 원 규모의 성과급을 요구하며 5월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역대급 실적의 이면에서 비용 압력이 커지고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증시 불장이 금리 인상 우려를 부르는 역설입니다. 코스피 급등에 빚투, 즉 신용융자 잔고도 천장을 뚫었습니다. 채권 비중은 줄고 있고, 금리 인상 우려가 다시 시장 한편에서 불거지고 있습니다.

현재까지의 근거를 종합하면, 반도체 실적 모멘텀과 외국인 재매수가 단기적으로 상승 흐름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이 판단은 23일 SK하이닉스 실적이 시장 기대치를 크게 하회하지 않고, 이란 협상이 전면 결렬로 치닫지 않는다는 조건 위에 있습니다. 실적이 컨센서스를 밑돌거나 삼성전자 파업이 현실화된다면, 선반영된 기대치가 일시에 되돌려지는 구간이 올 수 있습니다. 내일 확인해야 할 기준점은 SK하이닉스 실적 발표일인 23일과, 환율이 1480원을 다시 넘는지 여부입니다. 이 두 숫자가 랠리의 속도를 결정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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