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6937 사상 최고|개미 6조 던진 날

· KRX

반도체가 밀어올린 코스피

4일 국내 개인투자자들이 코스피에서 6조 3364억 원을 순매도했습니다. 그런데 지수는 오히려 5.12% 폭등해 사상 처음으로 6900선을 돌파하며 6936.99에 장을 마쳤습니다. 개미가 6조를 던진 날에 코스피가 역사를 새로 쓴 것입니다.

그 반대편에는 외국인과 기관이 있었습니다. 외국인은 3조 9623억 원, 기관은 2조 5568억 원을 순매수하며 지수를 끌어올렸습니다. 그리고 이 매수세의 중심에는 두 종목이 있었습니다. SK하이닉스(000660)가 12.52% 급등하며 144만 7000원에 마감했고, 시가총액은 처음으로 1000조 원을 돌파했습니다. 삼성전자(005930)도 5.44% 오른 23만 2500원으로 올해 종가 최고치를 다시 썼습니다.

이 반도체 랠리의 근원은 서울이 아닌 실리콘밸리에 있습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올해 설비투자 총액을 806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185조 원으로 설정했습니다. 지난해보다 73% 늘어난 규모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투자 계획에 메모리 반도체 가격 상승분으로만 250억 달러를 추가 반영했습니다. 값을 더 쳐주더라도 물량을 먼저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수치로 증명한 것입니다. 한국은행 유상대 부총재는 이를 두고 "반도체 사이클이 기존보다 상당히 길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국내외에서 커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지수 표면 아래에는 균열이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한 나머지 코스피 상장사 303곳의 12개월 선행 PER은 14배에 달합니다. 2007년 고점인 13배를 이미 넘어선 수준입니다. 올해 1~4월 코스피 전체 이익 추정치 증가분의 90% 이상이 이 두 종목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지수 6937이 모든 종목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숫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 격차가 커질수록 중요해지는 변수가 하나 있습니다.

한은 금리 인상 시그널

4일 원/달러 환율이 20.5원 내린 1462.8원에 마감했습니다. 코스피 사상 최고치라는 뉴스와 함께 나온 숫자지만, 환율을 끌어내린 두 번째 힘이 첫 번째보다 더 오래 시장에 남을 수 있습니다.

한국은행 유상대 부총재는 3일(현지시간)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금리 인하를 멈추고 인상하는 것에 관한 고민을 해야 할 때가 됐다"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5월 금리 인하를 시작한 이후 한국은행이 공개적으로 인상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처음입니다. 오는 28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 인상 시그널이 공식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유 부총재가 제시한 논거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이란 전쟁이라는 대형 악재에도 한국 1분기 GDP 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3.6%를 기록하며 당초 전망치 2%를 웃돌았습니다. 둘째, 반도체 수출 호조와 정부 소비 부양책이 맞물리면서 물가 상승률이 기존 전망치 2.2%를 상회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정부의 물가 안정 대책을 감안한 후에도 상당한 상방 압력이 남아있다는 것이 한은의 판단입니다.

이 시그널이 채권시장에 미치는 충격은 이미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연중 최고점 수준인 4.37%에 근접한 가운데, 국내 3년물 회사채 금리는 4.24%까지 올랐습니다. 올해 1~4월 회사채 발행액은 31조 2000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12조 2000억 원 줄었고, 기업들은 오히려 7조 2000억 원을 순상환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돈줄이 마르는 환경에서 살아남는 기업은 AI 수혜로 신용등급이 올라간 SK하이닉스(000660), LS일렉트릭(010120), 효성중공업(298040) 같은 종목들입니다. 고금리 직격탄을 맞는 쪽은 건설사와 화학업체입니다. 반도체 두 종목을 제외한 코스피의 PER 14배 격차가 금리 인상 사이클과 만나면, 이 양극화는 더 빠르게 벌어질 수 있습니다.

호르무즈와 AI 전력망

같은 날 두 가지 상반된 흐름이 동시에 나타났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에 갇힌 제3국 선박을 빼내기 위한 '프로젝트 프리덤'을 선언하면서 브렌트유가 배럴당 106달러로 1.9% 하락했습니다. 전쟁 리스크 완화 기대에 정유주는 일제히 약세로 반응했고, S-Oil(010950)이 4% 넘게 내렸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AI 수요라는 전혀 다른 이유로 전력기기와 전선주가 불기둥을 세웠습니다.

산일전기(062040)가 25.56% 급등했고, 가온전선(000240)이 19.67%, 일진전기(103590)가 17.06% 올랐습니다. 이들 종목의 상승 배경은 유가가 아닙니다. 산일전기는 지난달 30일 미국 데이터센터용 변압기 공급 계약을 체결했고, 효성중공업(298040)은 올해 1분기에만 4조 원 규모의 신규 수주를 따냈습니다. 이 중 70% 이상이 미국 시장에서 나왔습니다. HD현대일렉트릭(267260)도 1분기 분기 기준 역대 최대인 2조 6460억 원 수주를 기록했습니다. AI 데이터센터 증설과 미국 노후 전력망 교체 주기가 맞물리면서 국내 전력기기 업체들이 전례 없는 수주 잔고를 쌓아가고 있습니다.

두 가지 흐름을 하나의 조건으로 묶으면 앞으로의 방향성이 보입니다. 호르무즈 협상이 교착 상태를 유지하거나 트럼프가 공격 재개를 선택한다면, 유가는 다시 오르고 금리 인하 지연 압력이 강화됩니다. 이 경우 고금리 취약 업종의 부담이 커지는 반면, 방산주는 실적 기반 수주 잔고를 앞세워 상대적 강세를 유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대로 협상이 진전되어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아래로 내려온다면, 인플레이션 압력이 완화되면서 한은 금리 인상 시그널의 강도도 낮아질 수 있습니다.

시장이 내일 어느 시나리오를 선택할지를 먼저 알려줄 지표는 두 가지입니다. 원/달러 환율이 1450원대 진입 여부, 그리고 WTI 원유 가격이 100달러 선을 지키는지입니다. 6936.99라는 숫자를 만들어낸 반도체 랠리가 이 두 조건 아래에서 계속 작동하고 있다면, 코스피 7000은 남은 63포인트가 아니라 조건의 문제입니다. 그 조건이 흔들리는 첫 번째 신호는 외국인이 반도체 두 종목에서 순매도로 전환하는 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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