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7000 돌파|반도체가 전쟁을 이긴 날
7000의 진짜 이유
전쟁이 진행 중인데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미·이란 교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코스피는 6일 장중 7400선을 터치하며 7384.56으로 마감했습니다. 불과 이틀 전 6936에 머물렀던 지수가 단숨에 447포인트를 올려버린 것입니다.
출발점은 미국 동부시간 5일 밤이었습니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 장관이 "이란과의 휴전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공식 확인하면서 브렌트유가 배럴당 109.87달러로 4% 급락했습니다. 공급 차질 우려가 완화되자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가 4.23% 급등하며 사상 최고치를 썼습니다. 마이크론이 11%, 샌디스크가 12%, 인텔이 13% 뛰었습니다. 장 마감 후 AMD까지 어닝 서프라이즈와 가이던스 상향을 발표하며 시간외에서 10%대 추가 상승했습니다.
이 훈풍이 국내에 도달했을 때 외국인은 단 하루에 3조 1000억 원을 순매수했습니다. 삼성전자가 10% 넘게 뛰며 26만원을 돌파했고, SK하이닉스는 160만원을 찍었습니다. 올해 코스피 상승률은 74%로 글로벌 주요 증시 중 압도적 1위입니다. 그러나 선행 주가수익비율은 7.18배로 코로나 저점보다도 낮습니다.
여기서 확인해야 할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외국인 순매수가 이틀 연속 3조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지입니다. 오늘의 수급이 구조적 전환인지, 단발성 쏠림인지를 내일 수급 데이터가 갈라줄 것입니다.
삼성전자 1조 달러
코스피가 올라간 것보다 더 주목해야 할 신호가 있습니다. 삼성전자 시가총액이 처음으로 1조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TSMC에 이어 아시아 두 번째입니다. 같은 날 SK하이닉스 시총도 1000조 원을 넘겼습니다.
이 숫자를 단순한 주가 상승으로 보면 안 됩니다. 배경에는 구조적 수요 전환이 있습니다. 5일 블룸버그는 애플이 미국에서 판매하는 기기의 메인 칩 생산을 인텔과 삼성전자에 맡기는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삼성전자 텍사스 테일러 공장이 후보지입니다. TSMC 단일 의존 체제를 깨는 공급망 재편입니다. 인텔 주가는 이 소식에 13% 폭등했습니다.
교보증권은 이날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22만원에서 33만원으로 상향했습니다. 2026년 영업이익 전망치를 339조 원으로 제시했는데, 이는 시장 컨센서스 320조 원을 19조 원 웃도는 수치입니다. 근거는 두 가지입니다. HBM4 12단 본격 출하와 1c나노 공정 전환입니다. AI 데이터센터향 HBM 수요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가운데 일반 DDR5, 모바일 LPDDR5X까지 전 제품군에 걸쳐 공급 부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다만 검증 지점이 남아 있습니다. 삼성전자 노조가 준법투쟁에 돌입한 상황입니다. 증권가는 메모리 호황의 강도를 감안하면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지만, 2분기 실적 발표에서 생산 차질 여부가 수치로 드러날 것입니다. 목표주가 33만원은 노조 이슈가 단기 변수에 그친다는 전제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고유가 속 랠리의 조건
지금까지 두 가지를 확인했습니다. 휴전 유지가 단기 촉매였고, 삼성전자의 구조적 수요 전환이 중기 동력입니다. 그런데 이 랠리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세 번째 축이 있습니다. 반도체 무역흑자입니다.
iM증권 분석에 따르면 지난 3월 한국의 반도체 무역수지 흑자와 원유 무역수지 적자의 차이는 183억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미·이란 전쟁이 터진 달에도 반도체 흑자가 원유 적자를 183억 달러 넘게 압도했다는 뜻입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는 이 관계가 반대였습니다. 당시 고유가는 무역수지 적자를 키우며 코스피를 눌렀습니다. 지금은 구조가 달라졌습니다.
현재 WTI는 102달러 선입니다. 유가가 이 수준을 유지하더라도 반도체 업황 사이클이 가속되면 무역흑자 기조는 유지됩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습니다. 미국이 이란에 대해 군사적 확전보다 봉쇄 전략을 선택해야 유가 추가 급등이 제한됩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프로젝트 프리덤'을 선언하며 방어적 봉쇄로 무게 중심을 이동시킨 것은 이 전제를 뒷받침합니다.
반면 호르무즈 해협 긴장이 재확산되면 계산이 달라집니다. 이란은 현재 자국 허가 없이 해협을 통과하려는 선박에 사전 통행 허가제를 도입했고, 협상 재개 조건으로 미국의 해상 봉쇄 해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브렌트유가 다시 115달러를 넘어서는지가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임계치입니다. 그 수준을 넘으면 반도체 흑자가 원유 적자를 상쇄하기 어려워지고, 지금의 외국인 수급 논리가 흔들립니다.
코스피 8000을 전망하는 증권사들이 늘고 있지만, 그 경로는 단 하나의 변수에 달려 있습니다. 유가가 100달러 안팎에서 통제되느냐입니다.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가 내일도 외국인 매수세를 유지하는지, 그리고 브렌트유가 109달러 아래를 지키는지를 함께 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