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8% 붕괴·서킷브레이커|네이버·SKT 역행 상승
검은 월요일의 역설
코스피가 8.29% 폭락하며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역대 9위 낙폭을 기록한 날, 네이버는 13% 올랐습니다. 같은 시간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2조 원 이상을 순매도하며 21거래일 연속 매도 행진을 이어갔습니다. 그 매도 자본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동시에 9%씩 끌어내렸고 코스닥에는 서킷브레이커까지 발동됐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시각 네이버와 SK텔레콤 주가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이 역설의 출발점은 미국 브로드컴의 3분기 AI 반도체 매출 전망이었습니다. 브로드컴은 시장 기대치 172억 달러보다 낮은 160억 달러를 제시했고, 간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10.3% 하락해 2020년 3월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습니다. 이 충격이 개장 직후 코스피에 그대로 전이됐습니다. 외국인과 기관이 합산 3,000억 원 이상을 동시 순매도하자 지수는 9시 9분 기준 8.37% 하락한 7,477까지 밀렸습니다. 한국거래소는 1단계 서킷브레이커를 발동했고, 모든 거래는 20분간 중단됐습니다.
그러나 브로드컴 쇼크가 전달한 메시지는 단순한 반도체 수요 둔화가 아니었습니다. 시장이 진짜 읽은 것은 AI 투자 사이클에서 완성된 칩 공급 기업의 성장 여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신호였습니다. 외국인 매도는 HBM과 GPU 수혜주, 즉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집중됐습니다. 개인 투자자는 3,046억 원을 순매수하며 반대로 들어왔지만 지수를 지키기에 역부족이었습니다.
환율은 장중 1,555원까지 치솟아 17년 3개월 만의 최고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외환당국은 오전 11시 45분 국장급 공동 구두개입에 나서며 "역외 NDF 투기 거래가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고 경고했고, 이후 환율은 1,535원으로 내려앉으며 장을 마쳤습니다. 구두개입은 당일 쏠림을 완화했지만 외국인 누적 순매도 77조 원, 기업의 달러 보유 수요라는 구조적 흐름은 그대로였습니다. 폭락의 규모는 브로드컴 실적 하나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AI 인프라 자본의 이동
코스피가 무너지던 그 시간, 네이버 주가가 13% 오른 것은 단순한 반등이 아니었습니다. 이날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네이버 1784를 직접 방문해 이해진 의장과 함께 GW급 글로벌 AI 팩토리 공동 구축 계획을 공식화했습니다. 네이버는 세종을 기반으로 2027년 55MW 규모 AI 인프라를 시작해 최종적으로 GW급 팩토리를 조성한다고 밝혔습니다. 국내 인터넷 플랫폼 기업이 AI 인프라 사업자로 포지셔닝을 전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SK텔레콤도 같은 날 엔비디아와 DSX 플랫폼 기반 AI 팩토리를 GW급으로 확장하고 2027년 한국에서 첫 가동하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칩부터 데이터센터 운영까지 아우르는 풀스택 AI 인프라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구상입니다. SK텔레콤 주가는 코스피가 8% 폭락하는 와중에 강보합으로 마감했습니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와의 장기 기술 파트너십을 공식화하며 HBM4용 TC본더 442억 원 규모 발주까지 동시에 실행됐지만, 그날의 주가는 반도체 섹터 전반의 매도세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 분기는 같은 AI 자본 흐름이 두 개의 서로 다른 포지션 압력을 동시에 작동시킨 결과입니다. 외국인은 HBM·GPU 수혜주, 즉 반도체 칩 공급 기업에서 매도 압력을 높인 반면, 국내 기관과 일부 개인은 AI 인프라를 직접 운영하는 플랫폼 사업자 쪽에서 신규 포지션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네이버의 13% 상승 거래량은 이날 전체 상승 종목 중 가장 두드러진 규모였습니다. 브로드컴 쇼크가 AI 칩 수요 사이클에 물음표를 단 것이 역설적으로 AI 인프라 플랫폼 기업의 재평가 계기가 된 셈입니다.
그러나 이 재배치가 지속 가능한 구조 전환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네이버와 SKT의 AI 팩토리 사업은 2027년 가동을 목표로 한 중장기 계획이고 실제 매출로 연결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외국인이 코스피 반도체에서 이탈한 자금이 국내 AI 인프라 플랫폼으로 유입됐다는 직접 증거는 아직 없으며, 네이버의 상승은 현재로서는 국내 기관과 개인 순매수가 만든 가격 움직임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젠슨 황 방한 직후 주가가 선반영을 넘어설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2027년 AI 팩토리 가동 시점의 실제 매출 기여 여부입니다. 그 검증이 완료되기 전까지, 외국인이 네이버와 SKT를 AI 인프라 섹터로 재분류해 순매수로 전환하는 흐름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날의 역행 상승은 구조 재편이 아닌 이벤트 반응으로 머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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