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산, 탄약사업 매각 거부|방산 호황 속 엇갈린 선택
두 개의 신호, 반대 방향
4월 8일과 10일, 국내 방산주는 정반대의 신호를 동시에 받았습니다.
8일, 미국과 이란이 2주간 휴전에 합의하자 코스피는 하루에 6.87% 급등했습니다. 외국인 투자자는 단 하루 만에 2조4000억 원어치를 순매수했습니다. 건설주는 줄줄이 상한가를 기록했고, 시장은 종전 이후 시나리오를 선제적으로 가격에 반영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날, 방산주의 대표 격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오히려 3.45% 하락했습니다. 전쟁이 끝난다는 소식이 전쟁 수혜주에는 악재로 작용한 것입니다. 이틀 후인 10일에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6.73% 추가 하락했습니다.
동시에 풍산 탄약사업부 매각 협상이 결렬됐다는 공시가 나오면서 풍산홀딩스는 하루 만에 14.39% 급락했습니다. 딜이 무산됐는데 주가가 급락한 것은 시장이 그 딜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이 두 가지 사건은 표면적으로는 별개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하나의 공통된 질문이 깔려 있습니다. 종전이 현실화될 때, 방산주는 오르는가 내리는가. 그리고 탄약 전문기업 풍산은 이 국면에서 어떤 포지션에 놓이는가.
풍산이 팔지 않은 이유
풍산의 탄약사업부 매각 검토는 2020년부터 시작됐습니다. 2022년에는 물적분할을 통해 '풍산디펜스'를 신설하려다 주주 반발로 무산됐습니다. 올해에는 인적분할 후 비공개 입찰까지 진행됐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단독으로 최종 입찰제안서를 제출했다는 보도까지 나왔습니다.
그런데 풍산이 일방적으로 철회를 통보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구조적 사실을 짚어야 합니다. 풍산의 방위산업부문 매출은 연간 1조1868억 원으로, 신동사업부문 2조6623억 원의 절반 수준입니다. 매출만 보면 방산은 부사업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영업이익률은 다릅니다. 신동사업의 이익률은 1% 안팎인 반면, 방위사업부문은 20%를 넘습니다. 매출의 30%가 이익의 70%를 만들어내는 구조입니다.
이 숫자가 의미하는 바는 단순합니다. 지금 풍산에서 탄약사업을 떼어내는 것은, 수익성의 핵심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방산 호황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이 사업부의 몸값은 앞으로 더 오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파는 것은 타이밍 면에서 최악일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규제입니다. 풍산은 국내 군용 탄약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습니다. 현대로템의 K2 전차에 탑재되는 포탄도 풍산이 납품합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이를 인수하면, K9 자주포 플랫폼과 그에 필요한 155mm 포탄, 그리고 화약까지 단일 그룹이 장악하는 구조가 됩니다. 공정거래위원회 입장에서는 국내 지상 무기체계 밸류체인 전체가 한화 아래 들어가는 것입니다.
실제로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할 당시에도 공정위는 함정 부품 독점 우려를 이유로 까다로운 조건을 달았습니다. 방산업계의 유일한 구매자가 정부인 만큼, 정부 역시 이 합병에 우호적이기 어렵습니다. 한화가 대체 불가능한 협상력을 갖추게 되면 단가 인상에 대응할 수단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반전 카드: 한화도 원하지 않았다
시장의 통념은 이 딜이 풍산의 반발로 무산됐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정확하게는, 양측 모두 이 거래에 강한 의지가 없었다는 것이 사후에 드러났습니다.
HD현대그룹과 LIG그룹도 인수 의향이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역시 내부적으로는 처음부터 의지가 강하지 않았다는 전언이 나왔습니다.
왜 그럴까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사업 방향을 보면 이해가 됩니다. 한화는 K9 자주포, 레드백 장갑차 같은 플랫폼을 수출하는 구조입니다. 플랫폼이 수출되면 소모품인 탄약 수요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구조입니다. 굳이 탄약 제조사를 직접 소유하지 않아도 된다는 계산이 가능합니다. 한화는 지금 엔진 고도화, 유도무기 정밀화, 위성 사업 등 첨단 방산으로 방향을 틀고 있습니다. 풍산의 강점인 금속 가공과 화약 배합은 이 전략 방향과 맞지 않습니다.
여기에 재무 부담도 있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차입금은 12조3949억 원에 달합니다. 현금성 자산이 7조7000억 원을 넘어 표면상 풍요로워 보이지만, 2028년까지 11조 원 신규 투자를 주주들에게 공언한 상태입니다. 이 계획에는 국내 M&A가 명시적으로 제외돼 있었습니다. 1조5000억 원으로 추정되는 풍산 인수 대금을 쓰려면 별도 조달이 필요하고, 기존 유증 자금을 전용하면 공시 위반 논란이 생깁니다.
결국 딜은 쌍방이 출구를 원한 상황에서, 풍산이 먼저 공식화한 것에 가깝습니다.
구조 성장 vs 단기 변동성
그렇다면 방산주의 방향성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한 달간의 방산 ETF 성과부터 보겠습니다. 국내 상장된 방산 테마 ETF 15개 중 수익을 낸 것은 2개뿐이었습니다. 'PLUS K방산'은 한 달간 4.32% 하락했고, 레버리지 상품은 11~12%씩 급락했습니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방산주 호재라는 공식이 이번에는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한 발언에 따른 급등락이 이익을 갉아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단기 성과와 구조적 방향은 구분해야 합니다.
SK증권 보고서는 NATO 국가들이 2035년까지 GDP의 5%를 국방비로 지출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을 제외한 NATO 국가들의 추가 필요 지출이 약 1조64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유럽 역내 생산만으로는 이 수요를 소화하기 어렵습니다. 이 공백을 K방산이 메울 수 있다는 논거입니다.
하나증권은 중동에서도 비슷한 논리를 제시했습니다. 이번 전쟁을 통해 중동 국가들은 석유화학단지, 발전소, 항만 같은 핵심 인프라가 직접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고가의 고성능 방공체계만으로는 대량의 저가 드론 공격을 막기 어렵다는 것도 드러났습니다. 이 경험이 중동의 군비 지출을 종전 이후에도 구조적으로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방산 4사의 수주 잔고는 이미 120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향후 4~5년치 일감이 이미 확보된 상태입니다. 단기 주가 흐름이 어떻게 되든, 실적의 방향성은 이미 세팅돼 있습니다.
반면 풍산은 다른 차원의 불확실성을 안고 있습니다. 류진 회장의 장남 류성곤 씨는 미국 시민권자로, 개정 방위사업법상 외국 국적자는 방산업체 경영권을 보유할 수 없습니다. 후계 구도가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방산 부문의 처리 방향은 언제든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습니다. 풍산은 매출의 70%를 신동 부문이 담당하지만 영업이익의 70%는 방산 부문이 만들어냅니다. 방산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회사의 밸류에이션 자체가 달라집니다.
두 갈래 시나리오
지금 이 국면에서 방산주를 둘러싼 경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종전이 확정되는 시나리오입니다. 4월 11일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린 미국과 이란의 첫 종전 회담이 진전을 이루고, 핵 협상까지 연결된다면 시장은 '포스트 워' 국면으로 본격 전환됩니다. 이 경우 건설주와 에너지주가 주도주로 부상하고, 방산주는 단기적으로 조정을 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수주 잔고가 실적으로 인식되는 과정에서 방산주는 재평가 국면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종전이 무기 수요를 꺼뜨리는 것이 아니라, 중동의 군비 재편과 유럽의 재무장이라는 더 큰 흐름이 그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협상이 결렬되거나 지연되는 시나리오입니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이미 "레바논에서 휴전은 없다"고 선을 그었고, 이란 국회의장은 휴전 협정 위반을 주장했습니다. 협상 변수는 트럼프 한 사람의 입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세 번째 행위자에게도 달려 있습니다. 협상이 무산되면 유가는 다시 상방 압력을 받고, 방산주는 단기 반등 국면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변수가 야기하는 변동성 자체가 방산 ETF 투자자에게는 손실 요인이 됩니다.
풍산의 경우, 이 두 시나리오 중 어느 쪽에서도 방산 부문의 수익성 자체가 훼손되지는 않습니다. 탄약은 전시에도 소모되고, 전후 비축 수요에서도 소모됩니다. 방산 부문의 영업이익률 20%는 시나리오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구조적 숫자입니다. 다만 승계 이슈와 사업 분할 논의가 재부상할 경우, 주가는 딜 기대감과 딜 무산 충격을 반복하는 구조적 변동성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증거의 무게는 구조적 방산 성장 쪽에 쏠려 있습니다. 단, 이것이 단기 주가 방향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번 국면이 보여준 핵심 교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