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종전 기대|코스피 8000 외국인 복귀 전제?

· KRX

이란 협상과 8000선

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8000선을 돌파한 날, 외국인은 순매도에서 순매수로 전환했습니다. 두 사건이 같은 날 일어났다는 것은 표면적으로 자연스럽지만, 순서를 따지면 설명이 흔들립니다. 코스피는 이미 수일 전부터 외국인 매도 속에서도 상승하고 있었습니다. 이란 협상 낙관론은 외국인이 다시 들어온 이유가 아니라, 외국인이 이미 들어오기 시작한 뒤에 추가된 이유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국과 이란이 카타르에서 간접 협상을 재개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의 단계적 개방과 60일 휴전 연장이 합의 초안에 포함됐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WTI 선물은 하루 만에 7% 넘게 하락하며 90달러 턱걸이로 내려앉았습니다. 유가 하락은 코스피에 두 방향으로 작동했습니다. 첫째, 수입 물가 부담이 줄면서 국내 기업 이익 전망이 개선됩니다. 둘째, 달러 강세 압력이 완화되면서 원화 절상 기대가 생겨나고, 외국인의 환차손 우려가 낮아집니다. 원·달러 환율은 장중 10원 이상 급락해 1500원대 초반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포지션 압력의 실제 구조를 봐야 합니다. 이 대통령은 환율 1500원 돌파 원인으로 '주가 3배 폭등 이후 외국인 차익실현 매도'를 지목했습니다. 이는 외국인 매도가 이란 전쟁 리스크 때문이 아니라 코스피 랠리에 올라탄 외국인이 이익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임을 시사합니다. 협상 진전이 외국인 복귀를 촉발한 것이 아니라, 차익실현 사이클이 일단락되면서 외국인이 다시 매수로 전환하던 시점에 협상 뉴스가 겹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해석이 맞다면 오늘의 8000선 돌파는 이란 협상 의존도가 시장이 보는 것보다 낮고, 오히려 코스피 내부의 수급 사이클이 결정적이었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협상이 교착으로 돌아서도 외국인이 매수를 유지할 수 있는가입니다. 그 답은 외국인이 어느 섹터로 자금을 집어넣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장보고 N과 방산 재편

외국인이 복귀하며 가장 강하게 수급이 유입된 섹터 중 하나는 조선과 방산이었습니다. 그 배경에 이란 협상과는 독립적인 국내 비경제적 충격이 있었습니다. 정부가 핵추진잠수함 도입 계획인 '장보고 N사업'을 공식화하며 2030년대 중반 1번함 진수 목표를 발표했습니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수주 경쟁의 핵심으로 부상하면서, 두 종목의 주가는 당일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습니다. 신조선 발주가 1000척을 돌파했다는 별도 뉴스가 같은 날 나오면서 조선주 전반이 강세를 보였지만, 장보고 N사업이 만들어낸 프레임 교란은 다른 성격입니다. 단순한 수주량 증가가 아니라, 국내 조선사가 핵추진 기술 개발 주체로 포지셔닝되는 구조적 전환점이기 때문입니다. 한미 핵연료 농축·재처리 협력이 가속화된다는 보도가 동시에 나오면서, 원전 건설주까지 수혜 기대가 확산됐습니다.

외국인 입장에서 이 체인은 명확한 포지션 재편 신호로 읽힙니다. 기존에 방산주를 저평가 섹터로 배분해온 외국인 기관 중 일부는 한국 방산이 단순 수출 테마가 아니라 국내 전략 자산 생산 주체로 재정의되는 시점에 비중 확대를 검토할 유인을 갖게 됩니다. 가격 신호만으로는 이 흐름이 단기 이벤트 트레이딩인지, 중기 섹터 재배분인지 구별할 수 없습니다. 구별의 기준은 한 가지입니다. 장보고 N사업의 예산 배분과 한미 협력의 구체적 진전이 확인되는 시점에 기관 외국인의 조선·방산 비중이 그대로 유지되는지 여부입니다. 그런데 오늘 코스피 상승을 이끈 또 다른 축은 이 섹터도, 이란도 아닌 전혀 다른 곳에서 나왔습니다.

AI 기판과 황제주 재편

삼성전기(005930)가 장중 16% 급등하며 사상 최고가인 157만 원을 기록하고, LG이노텍(011070)이 22% 뛰며 100만 원을 돌파해 황제주 반열에 올랐습니다. 두 종목에 공통된 원인은 AI 서버 기판 수요의 구조적 확대에 대한 재평가입니다. 하나증권은 LG이노텍 목표가를 130만 원으로 상향 조정하며 '전 사업부의 우상향 방향성'을 제시했습니다. 삼성전기는 올 초 27만 원에서 시작해 이날 157만 원까지 올라 5개월 만에 6배에 육박하는 상승을 보였습니다.

이 흐름의 성격은 단일 보고서가 유발한 매수가 아닙니다. 외국인과 국내 기관이 AI 인프라 투자 확대의 국내 공급망 수혜처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기판 섹터가 TSMC나 엔비디아 직접 투자의 대안으로 재발견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SK하이닉스(000660)의 iHBM 기술 공개, 젠슨 황의 대만 방문에서 삼성·SK·현대차·LG와의 면담이 잡혔다는 보도가 같은 날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외국인 입장에서 한국 AI 공급망 익스포저는 반도체 직접 매수가 아니라 기판·패키징 섹터를 통한 간접 접근이 리스크 조정 수익 측면에서 더 효율적이라는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코스피 8000선 돌파를 만든 자본 흐름의 구조는 이렇게 정리됩니다. 이란 협상이 유가 하락과 원화 절상을 통해 외국인 재진입의 환경을 조성했고, 그 자본은 코스피 전체에 분산되지 않고 AI 기판·조선·방산이라는 세 개의 서사가 겹치는 종목군에 집중됐습니다. 이 집중이 8000선을 만든 실제 메커니즘입니다. 반론은 하나입니다. 이란 협상이 다시 교착에 빠지면, 유가가 반등하고 원화가 다시 약세로 전환될 때 외국인이 이 세 섹터에서 포지션을 유지할 이유가 있는가입니다. 그 이유가 이란 협상이 아니라 AI 기판 수요와 장보고 N사업의 구조적 진전에서 나온다면 외국인 매수는 지속될 것이고, 이란 협상에서 나온다면 코스피는 협상 뉴스에 따라 흔들리는 구조로 남습니다. 다음 변수는 호르무즈 개방 30일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는 시점에 외국인 순매수 방향이 유지되는지입니다.

Link copi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