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시총 1위 등극 직후 동반 폭락
왕관의 무게
오늘 코스피는 미국 반도체주 급락의 여파로 9% 넘게 무너졌습니다. 개장 직후 매도 사이드카에 이어 서킷브레이커까지 발동됐고, 대장주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나란히 10%에서 14%대의 낙폭을 기록했습니다. 코스피는 장중 6,100선까지 밀리며 올해 여덟 번째 서킷브레이커를 맞았습니다.
SK하이닉스는 최근 삼성전자를 제치고 코스피 시가총액 1위 자리에 올랐습니다. HBM 시장을 주도하며 이룬 역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왕좌를 차지하자마자 삼성전자와 함께 두 자릿수 낙폭을 기록한 겁니다. 시장에서는 이 역전 직후의 동반 급락을 예사롭지 않게 보고 있습니다.
무엇이 방아쇠를 당겼나
직접적인 계기는 중국 창신메모리, CXMT의 상하이 상장이었습니다. 창신메모리는 상장 첫날 공모가 대비 472% 오른 가격에 거래를 시작하며 중국 본토 증시 시가총액 1위에 올랐습니다. 노무라증권은 목표주가를 공모가 대비 1240% 높은 수준으로 제시하며 향후 3년간 연평균 60%대 성장을 전망했습니다. 여기에 미국 반도체 장비주 약세와 엔비디아를 둘러싼 순환투자 논란까지 겹치면서 국내 반도체 대장주들의 매도 압력이 한꺼번에 쏠렸습니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급락 전에 이미 불안한 신호가 있었습니다. 한 증권사는 약 열흘 전,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을 앞서는 순간이 한국 반도체의 고점이 될 것이라는 취지의 보고서를 냈습니다. 실제로 시총 역전이 이뤄진 직후 두 종목이 함께 두 자릿수 급락을 겪으면서, 이 경고가 우연이 아니었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역전의 이면
역전의 배경을 들여다보면 두 회사의 다른 전략이 드러납니다. SK하이닉스는 D램과 낸드에만 집중하며 HBM 슈퍼사이클의 수혜를 온전히 흡수했습니다. 반면 삼성전자는 메모리, 파운드리, 시스템반도체를 모두 아우르는 종합 반도체 회사인 만큼 파운드리 부문의 부진이 전체 수익성을 끌어내렸습니다. HBM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곳도 삼성전자였지만, 초기 수익성 판단에 따라 추가 투자를 늦춘 것이 역전의 한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이번 급락이 일시적 조정인지, 추세 전환의 시작인지는 아직 갈린 상태입니다. 시장은 이번 주 발표되는 미국 마이크론의 실적을 다음 판단 근거로 주목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론은 메모리 업황을 한 달 먼저 가늠하는 풍향계로 불리는데, 그동안 예상을 웃도는 실적을 발표해왔던 흐름이 이번에는 둔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은 질문
급락 당일 수급을 보면 개인과 기관 투자자는 오히려 순매수로 대응했습니다. 일부 증권가에서는 중국 CXMT의 물량이 우선 내수용에 머물 가능성이 크고, 국내 기업에 대한 실질적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함께 나왔습니다. 공포에 의한 투매와 구조적 위협 사이에서 시장의 판단이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셈입니다.
결국 오늘의 급락은 단순한 반도체주 조정이 아니라, 새로 시총 1위에 오른 SK하이닉스가 그 자리의 무게를 얼마나 버텨낼 수 있는지를 묻는 사건이었습니다. 창신메모리의 부상은 아직 최첨단 HBM 영역까지는 위협하지 못하지만, 범용 메모리 시장의 구도는 이미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주 마이크론 실적과 향후 중국 업체들의 생산능력 확대 속도가, 지금의 역전이 오래갈 왕좌인지 아니면 짧은 반등이었는지를 가를 다음 관문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