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신고가|전쟁 속 역주행

· KRX

이란이 해협을 닫았는데 반도체가 올랐습니다

미국이 이란 화물선에 함포를 쐈습니다. 이란은 미군 함정에 드론으로 반격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다시 봉쇄됐고, 국제유가는 7% 가까이 치솟았습니다. 이런 날 코스피는 올랐습니다. SK하이닉스는 장중 117만 5천원까지 오르며 사상 최고가를 새로 썼습니다. 이것이 이날 시장이 보낸 신호입니다.

외견상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입니다. 호르무즈 재봉쇄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직접적 악재입니다. 달러·원 환율은 새벽에 1460원대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1480원대에 육박했습니다. 대이란 갈등이 고조될수록 원화는 약해지고 수입 비용은 오릅니다. 그런데도 코스피는 0.44% 올라 6219포인트로 마감했습니다. 코스닥은 7거래일 연속 상승이었습니다. 전통적인 전쟁 리스크 공식이 이날 시장에서는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왜 공식이 깨졌는가

이유는 두 층위에서 작동했습니다.

첫 번째는 학습효과입니다. 시장 참가자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행동 패턴을 이미 여러 차례 목격했습니다. 극단적 긴장을 끌어올린 뒤 한발 물러서며 실리를 챙기는 방식입니다. 이른바 타코 패턴입니다. 이번 호르무즈 국면도 이란이 개방을 선언했다가 불과 하루 만에 재봉쇄를 발표하는 등 급격한 반전이 반복됐습니다. 시장은 이 긴장이 협상을 위한 수싸움이라는 전제로 움직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정학적 뉴스가 터질 때마다 하락폭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더 근본적입니다. SK하이닉스는 오는 23일 1분기 실적을 발표합니다. 증권가 컨센서스는 영업이익 35조~37조원 수준입니다. 일부 기관은 40조 돌파를 예상합니다. 동시에 하이닉스는 엔비디아 차세대 AI 플랫폼인 베라 루빈에 최적화된 소캠2 192GB 양산을 시작했습니다. KB증권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 재고가 현재 1~2주 수준으로 역사적 저점이라고 밝혔습니다. 한국투자증권은 고객사들이 먼저 1년짜리 계약을 5년으로 늘리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메모리 가격이 이미 사상 최고 수준인데도 고객사들이 선수금을 내고 장기계약을 요청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18일 코스피 12개월 목표치를 기존 7000에서 8000으로 올렸습니다. 올해 코스피 상장사 이익이 전년 대비 220%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근거였습니다. 이 숫자가 시장의 무게중심을 바꿔놨습니다. 전쟁 뉴스보다 다음 주 실적 발표가 더 중요한 변수가 된 것입니다.

이날 기관 홀로 1813억원을 순매수했습니다. 개인과 외국인은 차익을 실현했지만, 기관이 지수를 받쳤습니다. 중동 불안이 아닌 실적 기대가 매수 동기였다는 점에서 이번 상승은 단순 반등과 성격이 다릅니다.

이 흐름이 언제 깨지는가

지금 이 흐름을 지탱하는 전제는 두 가지입니다. 미·이란 협상이 무력 충돌로 전환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SK하이닉스가 23일 실적에서 시장 기대치를 충족한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중 하나가 흔들리면 시장 반응은 달라집니다.

유사한 국면은 2019년에도 있었습니다. 당시 이란의 호르무즈 위협과 미국의 해상 봉쇄 대응이 반복됐는데, 실제 무력 충돌이 아닌 한 코스피의 하락은 제한적이었습니다. 코스피는 지정학 뉴스에 일시 하락 후 반등하는 패턴을 반복했고, 결국 기업 이익 방향이 주가의 중심을 잡았습니다. 현재 상황은 그 구조와 닮아 있습니다. 다만 2019년과의 차이는 당시 이익 사이클이 하강 국면이었다면, 지금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강한 상승 사이클이 진행 중이라는 점입니다.

증거의 무게는 지금 이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에 쏠려 있습니다. 실적 기대가 지정학 리스크를 누르고 있는 지금, 23일 하이닉스 실적 발표가 이 판단의 1차 검증입니다. 영업이익이 35조원을 상회하면 골드만삭스의 8000 시나리오는 더 힘을 얻을 것입니다. 반면 기대에 못 미치거나 미·이란 협상이 2차 휴전 없이 결렬된다면, 학습효과로 눌려 있던 지정학 리스크가 한꺼번에 반영될 수 있습니다. 그 경우 6200선은 빠르게 6000 초반을 테스트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23일 오전 발표되는 숫자가 지금 이 장세의 정직한 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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