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130만 신고가|유일하게 하향 낸 증권사
시총 6000조 시대의 개막, 그리고 9개월 만의 반란
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6600선에 안착했습니다. 종가 6615.03포인트. 시가총액은 6000조 원을 돌파했고, 1년 전과 비교하면 덩치가 2.8배로 불었습니다. SK하이닉스는 장중 130만 원을 터치했습니다. 전 세계 시가총액 순위 17위, 한국 기업이 그 자리에 오른 것은 처음입니다.
시장은 한목소리였습니다. 골드만삭스는 코스피 상단을 8000으로 올려잡았고, JP모건은 8500을 제시했습니다. 반도체 투톱의 합산 시총 목표치로 3300조 원을 제시한 증권사도 나왔습니다. "200만닉스"라는 말이 시장에서 대세로 굳어지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날 오전, 단 한 곳이 반대 방향의 보고서를 냈습니다.
BNK투자증권은 27일 SK하이닉스에 대한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보유'로 내렸습니다. 목표주가는 130만 원. SK하이닉스 주가가 장중 130만 원을 돌파하는 그 시각에, 목표주가가 현재 주가와 같은 수준이라는 보고서가 공개된 것입니다. 9개월 만의 투자의견 하향이었습니다.
시장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주가는 5% 가까이 더 올랐습니다.
"AI 사이클이 후반부에 진입했다"
BNK투자증권 이민희 연구원이 하향의 근거로 내세운 것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1분기 실적이 기대치에 못 미쳤습니다. SK하이닉스의 1분기 영업이익은 37조 6103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05% 증가했습니다. 분기 기준 사상 최대였습니다. 그런데 이 연구원은 "컨센서스를 영업이익 기준 3% 소폭 상회하는 데 그쳤다"고 평가했습니다. 일부 시장이 기대하던 40조 원 이상의 어닝 서프라이즈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낸드 비트그로스가 분기 대비 11% 감소하며 이익률이 예상보다 낮았다는 분석도 덧붙였습니다.
둘째, AI 설비 투자 흐름이 3월 이후 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판단입니다. 추론 AI 사이클이 후반부에 진입하고 있다는 시각입니다. 이 연구원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추론 AI 사이클이 후반부라는 점과,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은 HBM4 매출 비중 확대의 영향"을 함께 거론했습니다.
셋째, HBM4로의 세대 전환입니다.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인 HBM4는 직전 세대보다 수익성이 낮습니다.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의 차세대 GPU 플랫폼 '베라 루빈'에 맞춘 SOCAMM2를 본격 양산하고 있다는 것은 시장도 알고 있습니다. 다만 이 연구원의 시각은 달랐습니다. 신제품이 출시될수록 마진 구조가 바뀐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BNK투자증권의 분석은 2분기 영업이익을 60조 2500억 원으로 전망합니다. 현재 컨센서스보다 높은 수치입니다. 즉, 실적 자체가 나빠진다는 게 아닙니다. "가파른 실적 증가에도 사이클 후반에 진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고성장주 프리미엄이 아닌 저PER주로 재평가받아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시장은 이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같은 날 발표된 인텔 실적에 있습니다. 인텔은 직전 분기 135억 80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컨센서스 124억 달러를 크게 웃돌았습니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4.32% 급등했고, 이 훈풍이 국내 반도체 전 종목에 번졌습니다.
130만 원이 천장인가, 통과점인가
BNK투자증권의 하향이 주목받는 이유는 타이밍 때문만이 아닙니다. 이 보고서가 옳다면, 지금 시장이 보지 못하고 있는 변수가 하나 있는 것입니다.
SK하이닉스의 현재 주가는 목표주가 130만 원을 이미 넘어섰습니다. 투자의견 '보유'는 사실상 '추가 매수를 자제하라'는 신호입니다. 그러나 증권가 컨센서스는 정반대입니다. 다수 증권사의 목표주가는 160만 원에서 200만 원 안팎에 형성돼 있습니다. 동일한 회사를, 동일한 실적을 보고, 이렇게 다른 결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비슷한 국면이 있었습니다. 2021년 반도체 업황 정점 당시에도 소수의 증권사가 사이클 전환을 먼저 경고했고, 시장은 수개월 더 올랐다가 꺾였습니다. 당시 하향 보고서는 틀린 것이 아니라 빨랐던 것입니다.
현재 근거의 무게는 강세론 쪽으로 기울어 있습니다. LS일렉트릭은 1분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냈고, 북미 매출은 전년 대비 80% 급증했습니다. 이란 협상 기대감이 지정학적 리스크를 완화하고 있고, 외국인과 기관은 2조 원 이상을 쌍끌이 매수했습니다. 코스피 선행 PER은 여전히 7배 중반 수준으로, 글로벌 대비 저평가 구간입니다. 이 흐름이 유지되려면 SK하이닉스의 2분기 실적이 컨센서스 60조 원 안팎을 충족하고, HBM4 공급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돼야 합니다.
다만, BNK투자증권의 논리가 현실화되는 조건도 구체적입니다. 하반기 빅테크들의 AI 설비 투자 가이던스가 하향 조정되거나, HBM4 마진 구조가 시장 예상보다 낮게 확인될 경우입니다. 특히 오는 4월 말부터 순차적으로 공개되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의 2분기 가이던스가 첫 번째 검증 지점이 됩니다.
SK하이닉스 주가가 130만 원을 넘어선 날, 시장에서 유일하게 '그만 사라'고 말한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9개월 뒤 이 보고서가 틀렸다는 것이 증명될지, 아니면 빨랐다는 평가를 받을지는 아직 열려 있습니다. 그 답을 가장 빨리 알려줄 숫자는 SK하이닉스의 2분기 영업이익입니다. 시장이 기대하는 60조 원을 넘느냐, 못 미치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