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AE OPEC 탈퇴|유가 100달러 이후 한국 정유가 오른 이유
코스피 사흘 연속 최고치, 그런데 주인공이 바뀌었습니다
29일 코스피는 전일 대비 49.88포인트, 0.75% 상승한 6690.90으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종가 기준 사상 최고치입니다. 사흘 연속 경신입니다.
그런데 이날 지수를 끌어올린 업종은 반도체가 아니었습니다. SK하이닉스는 0.54% 하락했습니다. 한미반도체는 2.59% 내렸습니다. 최근 급등을 주도했던 반도체 장비주들이 일제히 숨을 죽인 날, 코스피 200 에너지·화학 지수는 5.03% 뛰어올랐습니다.
에쓰오일이 13.14% 급등했습니다. SK이노베이션은 12.63% 올라 52주 신고가를 기록했습니다. 롯데케미칼은 하루에 24.87% 상승해 역시 52주 신고가를 썼습니다. 이수화학, 대한유화, 금호석유화학이 나란히 20% 안팎 올랐습니다.
간밤 뉴욕증시에서는 오픈AI 성장 우려가 번지며 나스닥이 0.90% 하락했습니다. 기술주 중심의 약세 흐름이었습니다. 그 악재를 이겨내고 코스피를 사흘 연속 최고치로 끌어올린 것은 AI 종목이 아니라 정유와 화학이었습니다.
왜 이날 한국 정유·화학 종목이 폭발적으로 올랐는가. 그 답이 중동에 있었습니다.
OPEC 카르텔에 균열이 생긴 날
28일 현지 시간, 아랍에미리트(UAE)가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OPEC+에서 탈퇴한다고 선언했습니다. 5월 1일부터 효력이 발생합니다.
UAE는 OPEC 내 세 번째 산유국입니다. 하루 생산 능력이 480만 배럴에 달하지만, 카르텔 할당량 때문에 340만 배럴만 생산해 왔습니다. 탈퇴는 할당량 밖에서 독자적으로 생산량을 결정하겠다는 선언입니다. UAE 에너지부 장관은 "현재 시장은 공급 부족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국제유가는 즉각 반응했습니다.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4% 가까이 급등해 100달러를 돌파했습니다. 브렌트유는 111달러를 넘어섰습니다. 단 하나의 국가 탈퇴 선언이 심리적 임계선인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시켰습니다.
시장이 놀란 이유가 있습니다. 이란과의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 우려가 이미 시장에 깔려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거기에 OPEC 카르텔 자체의 균열이 겹쳤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UAE 탈퇴로 OPEC 생산능력이 13%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공급 협조 체제가 무너질 수 있다는 신호가 유가를 밀어올린 것입니다.
한국 정유·화학 업계의 입장은 다릅니다. 유가가 오르면 정제 제품 판매 가격이 오르고, 재고 자산 평가 이익이 발생합니다. 화학 업체들도 원료 재고의 평가 이익이 생깁니다. 단기적으로는 호재입니다.
다만 전제가 하나 있습니다. 이 유가 상승이 지속 가능한 수요 기반 위에 있어야 합니다. 지금의 급등이 지정학적 공포와 카르텔 붕괴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수급이 안정되는 순간 유가는 빠르게 하락할 수 있습니다. 그때 정유·화학 업종의 주가도 되돌림을 맞이할 것입니다.
UAE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갈등은 오래됐습니다. 예멘 내전을 공동 수행했지만, 대리 세력 지원을 두고 갈라섰습니다. 석유 생산량을 둘러싼 갈등은 2021년 OPEC+ 회의에서 정면충돌로 이어졌고, 그때도 국제유가는 급등했습니다. 이번 탈퇴는 그 갈등의 최종 결론입니다.
유가 100달러가 지속되는 조건, 그리고 그것이 깨지는 조건
리스타드 에너지의 지정학분석 책임자는 "UAE의 탈퇴는 장기적으로 OPEC의 구조적 약화를 초래할 것"이라며, "사우디아라비아의 지배력 지속 가능성에 광범위한 의문을 제기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 흐름이 이어지는 조건은 명확합니다. 이란과의 협상이 결렬되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하는 상황, 그리고 UAE가 실제로 증산에 나서면서 사우디아라비아가 대응 감산으로 압박을 강화하는 시나리오입니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진행된다면 WTI 110달러 이상도 열려 있습니다.
반대 조건도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과 협상을 재개해 해상 봉쇄를 푼다면 유가 급락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미국은 이란의 핵 포기 확답을 받아내기 위해 장기 해상 봉쇄를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협상이 열리는 순간, 봉쇄 해소와 함께 이란산 원유 공급이 시장에 복귀하고 UAE 탈퇴 충격은 희석됩니다.
원·달러 환율은 이날 5.4원 오른 1479원에 마감했습니다. 고유가와 중동 리스크가 환율 상방 압력으로 작용했습니다. 다음 날에는 FOMC 금리 결정과 함께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아마존, 알파벳의 실적 발표가 동시에 예정돼 있습니다.
한국 정유·화학 업종이 연속 상승을 이어갈 수 있는지는 FOMC 이후 달러 방향과 이란-미국 협상 국면이 결정할 것입니다. 빅테크 실적이 예상을 상회해 기술주가 반등하면 오늘의 정유·화학 강세 자금이 다시 반도체로 이동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유가 100달러 돌파는 수치 자체보다, OPEC 카르텔이 실질적으로 작동하는가라는 질문을 시장에 던졌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오기 전까지, 중동발 변수는 계속 시장을 흔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