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5% 급락 당일 레버리지 4조 순매수|신용잔고 37.7조의 전제
브로드컴 쇼크가 8천 피를 흔든 날
5월 한 달 동안 24% 올랐던 코스피가 오늘 하루 5.54%, 478포인트를 잃었습니다. 9천 피 목전이었던 지수가 한때 8천선을 위협받았고, 장 초반에는 12거래일 만에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습니다.
방아쇠는 미국 브로드컴이었습니다. 전날 밤 브로드컴은 3분기 AI 칩 매출 전망을 160억 달러로 제시했는데, 시장 기대를 밑돌자 주가가 12.59% 폭락했습니다. 마이크론도 7.74%, AMD·웨스턴디지털도 3%대 하락했습니다. 브로드컴 측의 해명은 수요 부진이 아니라 전력망 등 AI 데이터센터 인프라 구축이 예상보다 느리다는 것이었지만, 시장은 그 해명을 듣지 않았습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1539원까지 치솟았고,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만 3조 5391억원을 순매도했습니다. 기관도 9398억원을 팔았습니다. 삼성전자는 6.40%, SK하이닉스는 9.92% 급락했습니다. 두 종목이 코스피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이달 초 52.2%까지 올라갔던 터라, 이 두 종목의 낙폭이 지수 하락을 그대로 증폭시켰습니다.
그런데 그 같은 매도 흐름과 동시에, 반도체 레버리지 ETF로는 자금이 흘러들어오고 있었습니다. SOL AI반도체TOP2플러스에 3723억원, 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들에만 합산 약 9000억원 이상이 들어왔고, 삼성전자 단일종목 레버리지에도 2875억원이 순매수됐습니다. 삼성전자는 오늘 AI 반도체 호황 성과를 소비자에게 돌리겠다는 이유로 4천억원 규모의 온누리상품권을 지급하는 감사 페스티벌을 발표했지만, 그 주가는 같은 날 7%가 빠졌습니다.
누가 어느 방향으로, 왜 지금 이 시점에 움직였는가
외국인은 코스피가 7천 피를 넘어선 5월 7일부터 오늘까지 20거래일 연속 순매도를 이어왔습니다. 그 누적 금액이 70조 1576억원입니다. 그러면서도 외국인의 코스피 시총 보유 비중은 39.08%에서 40.41%로 오히려 올랐습니다. 팔면서도 비중이 늘었다는 것은, 그들이 판 속도보다 주가가 더 빠르게 올랐음을 뜻합니다.
이 과정에서 개인은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오늘 하루만 4조 2211억원을 순매수하며 지수의 하단을 지지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금의 상당 부분은 레버리지 ETF로 향했습니다. 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들의 수익률 하위 5개가 모두 -20%대였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시간대 순매수 상위에는 동일 종목들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이 흐름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한 저가 매수 심리가 아닙니다. 이 매수세의 위치 압력을 지정하는 숫자가 있습니다. 신용거래융자 잔고가 6월 4일 기준 37조 7376억원으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이 자금은 단순 보유가 아닙니다. 금리를 내면서 주식을 보유하는 포지션이기 때문에, 주가가 떨어질수록 이자를 내면서 손실을 견디거나, 더 사서 평균단가를 낮추거나, 팔아서 손실을 확정하는 세 가지 선택지 앞에 서게 됩니다. 오늘 레버리지 매수는 그 중 두 번째 경로였습니다.
키움증권 한지영 연구원은 오늘 하락이 메모리 다운사이클이나 금리 급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차익실현 매물이 일시적으로 몰린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진단이 맞다면, 신용잔고를 끌어안은 개인의 레버리지 매수는 합리적입니다. 하지만 이 논리의 전제가 틀린다면, 즉 인프라 병목이 일시적이 아니라 AI 투자 사이클 자체의 속도를 제한하는 구조적 요인이라면, 37.7조의 신용잔고는 그 자체로 다음 급락의 증폭 장치가 됩니다.
외국인과 개인은 같은 데이터를 보고 서로 다른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외국인의 20거래일 매도에는 주가가 너무 빠르게 올랐다는 전제가 있고, 개인의 레버리지 순매수에는 이번 조정이 짧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두 전제 중 어느 쪽도 오늘의 뉴스만으로는 결판이 나지 않습니다.
스페이스X 상장일, 신용잔고 검증일
오늘 하락의 배경에는 또 하나의 타이밍 변수가 있습니다. 미래에셋증권의 스페이스X 공모주 청약은 오전 8시 30분 개시 1분 만에 완판됐습니다. 1차 물량 3억 달러가 사라졌고, 잔여 2억 달러는 오는 8일에 추가 청약이 예정됐습니다. 스페이스X의 나스닥 상장일은 6월 12일입니다. 연합뉴스는 오늘 기사에서 스페이스X 상장을 앞두고 반도체에서 자금이 이탈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고 직접 언급했습니다. 코스피 시장에서 반도체 과잉 집중에 대한 경계심이 스페이스X 상장이라는 구체적 일정과 맞물려 있다는 뜻입니다.
확인해야 할 변수는 두 가지로 좁혀집니다. 첫째는 신용잔고입니다. 37.7조 신용잔고가 내일 이후에도 유지되는지, 아니면 오늘 레버리지 매수가 일부 반대매매 경계를 건드렸는지는 내일 장 개장 시 신용잔고 증감으로 확인됩니다. 신용잔고가 줄어들면 레버리지 해소가 시작된 것이고, 늘어나면 개인의 평균단가 낮추기가 계속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둘째는 외국인의 매도 지속 여부입니다. 외국인은 이미 70조를 팔고도 시총 비중이 올랐습니다. 추가로 팔 유인이 남아 있는지는 원화 환율과 나스닥 선물 흐름이 결정합니다. 1539원을 돌파한 환율이 내려오지 않는다면, 외국인의 환차손 부담이 추가 매도 압력을 만들 수 있습니다.
레버리지 4조 매수가 단기 저점 매수의 적중이 되는 경로와, 37.7조 신용잔고가 다음 하락의 뇌관이 되는 경로가 동시에 열려 있습니다. 두 경로의 분기점은 브로드컴이 말한 '인프라 병목'의 해소 속도가 아닙니다. 분기점은 그 전에, 현재 이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는 신용 자금이 내일도 주가 반등을 기다릴 수 있는지입니다. 만약 반등이 오지 않은 채 신용잔고가 38조를 넘어선다면, 그 숫자가 오늘의 레버리지 매수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아니라 해소 압력의 증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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